작가 소개

평범한 지방대 출신 대학생이 미국 변호사가 되기까지. 그 이후.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특별행정구역(Washington, D.C. 이하 "워싱턴")에서 포토맥(Potomac)강을 건너면 바로 버지니아(Virginia)주, 그중에서도 미국 국립묘지로 유명한 알링턴(Arlington) 카운티가 있다. 카운티는 우리나라로 치면 군(郡) 정도의 크기인데, 그중에서도 알링턴 카운티는 지리적으로 워싱턴과 가까운 만큼 아침마다 워싱턴 방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적잖게 볼 수 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워싱턴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내가 도착한 곳은 알링턴 카운티 국선 변호인 사무실이다. (Office of the Public Defender for Arlington County) 작년 말 버지니아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이곳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지는 약 9개월이 됐다. 국선 변호인은 말 그대로 형사 사건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되지 못하는 가난한 피고를 위해 국가에서(정확히는 주 정부) 선임해준 변호인이다. 즉, 우리는 형사 사건만을 전담한다.


사무실에서 사건 파일들을 집어 들고, 법원 가는 길에 커피를 주문해 기다리는 동안 당일 심리가 있는 사건들을 검토한다. 매일 법원의 아침은 보석금 신청 심리(bond hearing)로 시작되며, 이어서 경범죄(misdemeanor) 재판이 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심리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법원으로 향했다. 정문을 열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다. 법원 보안관(deputy sheriff)들이 나를 알아보고 가벼운 아침 인사를 전한다.


"Good morning, counsel!"


9개월 동안 거의 매일 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법원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나를 기억해 준다. 게다가 나는 이 법원에 자주 드나드는 거의 유일한 아시아계 변호사이기 때문에 특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있는 형사 법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 심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법원 내 대기석에는 낯익을 얼굴들이 보인다. 우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다른 국선 변호인 몇 명과 주변 개인 사무실 변호사들이다. 간단하게 잡담을 나누면서 판사가 입장하길 기다린다. 이윽고,


"일동 기립(All rise)!"


이라는 법정 보안관의 엄숙한 외침에 따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고, 판사가 입장한다. 법정을 한 번 둘러보더니 판사가 말한다.


"보석금 신청하러 온 변호인 있나요? (Any counsel here for bond motion?)"


앉아 있던 내가 사건 파일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변호인, 피고인 이름이 무엇이죠? (Counsel, who's your client?)"


내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어차피 판사도 나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형식상으로 항상 자기소개하는 것이 좋다고 선배 변호사들이 그랬다) 내 의뢰인의 이름을 불러, 법정 임시 구치소(holding cell)에 있는 의뢰인을 법정 보안관이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국선 변호인 사무실의 김정균 변호사이고, 제 의뢰인의 이름은 홍길동입니다 (Good morning, Your Honor. I am Jeonggyun Kim from the Office of the Public Defender and my client's name is John Doe)"


(참고로 한국의 "홍길동"과 같은 미국의 "아무개"는 흔히 "John Doe"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의뢰인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John Doe라고 칭했다) 잠시 후에 법정 보안관이 우리 의뢰인을 데리고 왔다. 파란색 죄수복을 입고, 발목에는 쇠고랑을, 손목에는 수갑을 찬 우리 의뢰인이 보안관의 지시하에 천천히 법정으로 걸어 나온다. 전날 구치소에서 만났던 의뢰인의 모습 그대로다. 마침내 의뢰인이 내 옆에 서고 내가 말하기 시작했다.


"이 심리는 피고인 측에서 제출한 보석금 신청서에 근거한 것인데, 현재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었고, 아직 보석금이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의 도주 위협과 사회적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작기에 합리적인 보석금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피고의 현재 거주지는... "

"(This matter comes on a motion to set bond. Mr. Doe is currently held without bond on the charge of Driving Under the Influence. Given that he has a low risk of flight and he is not a danger to the public, we ask the court to set a reasonable bond in this case. He is residing at... )"


이렇게 국선 변호인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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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법률 미드를 보며 변호사의 꿈을 품은 지 7년, 저는 미국의 국선 변호인이 되어 매일 법정에서 의뢰인들을 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조기유학은커녕, 초·중·고·대학교 시절을 전부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미국 로스쿨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불가능하다며 말리셨습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는 물론, 정보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 Law School Admission Test)을 처음 접하고 나서 미국 로스쿨에 강렬한 끌림을 느꼈고, 미국 법정 드라마와 각종 서적을 통해 미국 로스쿨/법조계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많은 정보 수집을 위해서 미국 변호사분들과 교수님들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약 1년 반에 걸친 준비 기간 끝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 로스쿨(Michigan State University College of Law)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시간 주립대 로스쿨에서 1년을 마친 후,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받아 미국 수도인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로스쿨(Georgetown University Law Center)에 2학년으로 편입하게 되었고, 2015년 졸업과 동시에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에 로클럭(law clerk) 제안을 받아 법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약 1년 반의 법원 근무를 마치고, 형사법과 국선 변호인 업무에 매력을 느껴서 지금 이곳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기록하고, 정보를 공유해 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브런치를 통해서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고 도움이 되고자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소통 부탁드립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카운티에서...


김정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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