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선변호인 업무를 택한 이유

변호사의 업무적 성장과 의뢰인의 신체적 자유

사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국선변호인은 그리 선호되는 직종은 아니다. 그렇다고 존경을 받는 명예직도 아니다. 오히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3D(dirty, dangerous, and difficult) 업종으로 기피되는 직종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나름대로 아주 신중한 고민 끝에 이 길을 택하였고, 이번 기회에 그 사고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왜 국선변호인 업무가 3D 업종인지 간단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1. Dirty

국선변호인 업무를 하다 보면 참 더러울 꼴(?)을 많이 보게 된다. 여기서 더럽다는 것은 말 그대로 더러울 수도 있고, 상황이 더러울 수도 있다. 국선 변호인들은 업무 특성상 노숙자들(homeless)을 많이 대리하게 된다. 게다가 노숙자들 중 상당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위생개념이 적은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에는 노숙자 의뢰인들은 마주 대하기가 어려웠다. 냄새는 물론 가까이 가기가 힘들었는데,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젠 익숙해져서 가끔 포옹도 한다. 게다가 가끔은 토사물, 피 웅덩이 사진, 혹은 피우다 만 담배꽁초 등이 증거로 제출되고, 우리는 이 증거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종종 범죄 현장이 적나라하게 비디오나 사진으로 찍힌 경우나 혹은 경찰 연행과정에서 의뢰인의 다채로운(?) 욕설을 청취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2. Dangerous

국선변호인 업무 특성상 정신질환자들과 범죄자들과 가까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항상 신체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보통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의뢰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해서 우리를 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놀랍게도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실제로 매우 온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의뢰인과 1:1 상담을 하거나 법정에서 의뢰인과 나란히 서있을 때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들고 있는 볼펜이나 노트 패드 (철제 스프링이 있는 경우)가 언제든지 의뢰인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Difficult

일단 국선 변호사는 의뢰인이 매우 많다. 개인마다 혹은 사무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특정 시점에서 100~200건이 넘는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 개별적 사건에 투자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지만, 의뢰인들의 자유가 걸려있는 만큼 어떤 사건도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의뢰인 접견, 법정 출두, 증거 수집, 검사와 협상 등 여러 가지 업무가 매일 동시 다발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당일 아침에도 오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게다가 판사, 검사, 법원 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상대해야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국선 변호사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뢰인들도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잖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국선변호인의 길을 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더 나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이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예전에 법원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겠다.


로스쿨 졸업 후 연방법원에서 로클럭으로 근무했었다. 연방판사는 재판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민사/형사 사건을 모두 담당한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형사 사건이 있었다. (아쉽지만 기밀유지를 위해서 그 쟁점이나 사실관계를 언급할 순 없다)


한 번은 내가 모시는 판사님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판결문 초안 작성을 지시받았다. 문제는 해당 판결문의 결론도 내가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했지만, 갈수록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초안을 작성하면 할수록 큰 부담감과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왜냐면 한 개인의 신체적/선택의 자유가 걸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초안을 작성하는 몇 주간 이 사건에 대한 고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침에서 일어나서 샤워를 할 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식사를 할 때, 운동을 할 때, 출근을 할 때 등등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고 어떻게 그 결론을 납득할만한 논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마 마음속으로 결론을 한 10번은 넘게 바꾸었던 것 같다. 중간에 어느 정도 결론을 짓고 잠시 마음을 놓다가도 "과연 내가 스스로 충분히 납득할 만큼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내가 모르는 저기 어딘가에 내가 간과한 판례 혹은 논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잠시 결론을 내려놓고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접근해보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내가 생각한 최선의 결론과 함께 초안을 작성해서 판사님께 드렸다. 판사님께서 읽어보시곤 판결문의 구성과 표현을 몇 개 바꾸시고는 "이대로 좋다"라고 하셨다. 즉, 내가 내린 결론 거기에서 제시한 근거와 논리에 동의하신 것이다!


이 결정은 바로 판사님의 결정이 되었고, 내가 내린 결론에 따라 해당 심리에서 패소한 검사 측은 상급 법원에 항소를 했다. 상급 법원은 우리 판사님의 결론이 옳다고 결론 내렸다. 즉, 내가 옳았던 것이다.


이 사건이 종결되고 회상해 보니, 이 사건은 내가 그동안 로스쿨을 졸업한 뒤 맡은 업무 중에 가장 많은 노력을 쏟았던 사건이었다. 아마도 형사 사건인만큼 개인의 신체적 자유가 걸려있었기에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울 수 있었다. 그 뒤에 깨닫게 되었다.


'형사 사건이야말로 개인의 신체적 자유가 걸려있는 만큼, 내가 그 어떤 사건들을 담당할 때보다 최선을 다할 수 있겠구나.'


내 경험상 무언가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양적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는 안 된다. 같은 실수에도 질 좋은 실수와 질 나쁜 실수가 있는데, 질 좋은 실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이나 지혜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실수이고, 질 나쁜 실수는 제대로 노력을 안 해서 생기는 즉, 피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다. 결국 질 좋은 실수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렇기 위에서는 일단 모든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 경우에는 형사 사건을 다루게 될 때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형사 사건을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검사가 되는 것과 피고인 측 변호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피고 측 변호인이 되는 것을 택했다.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검사 측 보다는 피고인 측 변호인의 책임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검사가 실수를 하면 그 실수를 파악하고 만회할 수 있는 여러 안전망이 존재한다: 우선 피고인 측 변호인이 있으며, 판사가 있으며, 상급 법원이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본인의 변호인이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 측 변호인의 실수는 개인의 인생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나는 더 어려운 길인 피고인 측 변호인의 길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국선을 택한 이유는 짧은 시간이 더 많은 사건에 노출되고, 더 어려운 환경에서 실무를 배워야만 빨리 성장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민자 출신의 아시아계 소수 인종으로서, 대다수가 소수 인종이며 종종 이민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사회적 약자인 의뢰인들을 더 잘 이해하며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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