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저)

변호사가 읽은 호모 데우스


homodeus.jpg


예전에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사피엔스"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즉, 과거의 기억(작가의 기존 작품)을 바탕으로 미래(읽지 않은 작품)를 예측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만큼의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미래가 이러이러했을 것이다"생각했던 내 논리가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역사학자였지, 미래학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작가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어떻게 인류가 현재까지 진화해 왔고, 어떤 식으로 문명을 이룩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으로 기술(description)했다. 즉,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서, 인류의 발달과 현재를 설명하는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를 제시한 것이다. 중세 전쟁사를 전공 후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에게 잘 어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모 데우스"에서는 더 나아가, 그의 과거~현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즉, 기존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미래 역사를 예측(prediction)하고 있다. 마침 "호모 데우스"의 부제는 역설적이게도 "미래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의 미래 예측 과정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유발 하라리는 몇 가지 대담한 논리적 전제를 바탕으로 그의 논지를 이끌어나간다. 그중에 하나는 "인간은 유기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라는 것이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고, 알고리즘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이 컴퓨터 코드처럼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욕망"도 전부 알고리즘의 결과이며, 미래에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모든 감정과 욕망을 일일이 분석하고, 심지어는 조작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 본연의 핵심 역할인 정치·경제 활동이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욕망과 감정을 분석/통제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투표를 통해 대리인을 선출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고(왜냐면 개인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거나 심지어 이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인지/신체 능력이 필요한 모든 경제적 활동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은 필요가 없어지고,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수의 초인류만 남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논리적 한계를 드러낸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즉, 인간은 유기적(생물적) 알고리즘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젠간 데이터 축적/분석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모든 사고/감정/욕망이 무기적(기계적) 알고리즘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특별한 인간(초인간)"은 무기적 알고리즘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특별한"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그 인간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못하고 있다. 아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어떤 고유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의 예측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 중 "기계가 점진적으로 인간의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정도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그는 다소 극단적으로 관점으로 현재 인간의 업무 중 99.99%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책임 소재"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 변호사, 판사, 경찰, 교사 등의 직업이 고도화된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29쪽) 물론 그들의 업무는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은 기계로 대체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된 직업들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직업이며, 우리가 그들의 존경하고 많은 보수를 제공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하는 일이 특히나 어렵고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사의 경우를 보자. 우리가 의사를 만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감기"가 걸렸을 때이다. (물론 이는 한국에 한정된 면이 크다) 의사가 감기를 진단하고 감기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감기약을 처방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쉬워 보인다.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보이는 일도 실제로는 많은 복잡성이 숨겨져 있는 게, 단순히 처음에는 감기처럼 보이는 증상이 알고 보면 치명적인 질병의 증상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의사가 감기 진단을 내리는 것은 다시 말하면, "감기 증상과 비슷한 나머지 수백 가지 질병 중 하나에 걸린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의사가 결핵을 감기로 오진했고, 나중에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의사는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만약 알고리즘이 실수를 했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프로그래머? 제작사? 혹은 프로그램을 감수한 의사?


세상의 모든 의사가 기계로 대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은, 곧 인류가 스스로의 목숨과 건강을 기계에 완전히 위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사가 아니라 판사라고 생각해보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데, 당신은 로봇 판사가 당신을 가두는 판결을 했을 때 순순히 수긍하고 감옥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혹은 심지어 사형 선고를 내렸다면?) 만약 그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물론 어느 정도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전문직의 업무가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변호사가 자주 하는 판례 검색 작업이나 증거 수집 및 자료 정리(discovery) 과정은 이미 인공 지능이 상당 부분 관여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변호사 100명이 할 업무를 70명이 할 수 있도록 "효율화"를 할 순 있겠지만, "대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위에서 말한 "책임 소재"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보는 미래에 대한 모순된 "예측"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역사학자가 그러했듯이 유발 하라리도 몇 가지 알려진 사실만을 가지고 그 나머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으로 메꾸는 시도를 했으나, 치밀한 논리적 반증의 부족과 예측 분야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허황된 예측에 그치고 말았다.


나로서는 호모 "사피엔스"를 생각하고 기대했는데, 호모 "데우스"에 데인 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국선변호인 업무를 택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