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개의 탄생
한 때 태풍 카트리나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던 미국 루지애나 주의 뉴 올리언스 시. 용의자 D는 소녀 2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두 번이나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첫 번째 조사를 받을 때도 이미 무죄를 주장했지만, 경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좌절한 D는 이렇게 말한다.
“This is how I feel, if y’all think I did it, I know that I didn’t do it so why don’t you just give me a lawyer dog ’cause this is not what’s up.”
여기서 이 "dog"이란 단어 하나가 나중에 그의 유죄판결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어가 되었을지 누가 알았을까? (여기에서 dog은 일종의 속어로 영어의 "buddy"와 비슷한 표현이며, 우리말로 치면 "형씨" "친구" "이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자.
미란다 원칙이란 것이 있다. 미국 수정 헌법 제5조로부터 비롯한 이 원칙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 후 심문하기 전에 반드시 이 원칙을 고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미란다 원칙 고지는 체포할 때마다 무조건 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체포 후 "심문(interrogation)"을 시작할 때 고지하는 것이다. 즉, 경찰이 피의자를 심문할 생각이 없다면 엄밀하게 말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미란다 고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버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원문으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You have the right to remain silent. Anything you say can and will be used against you in a court of law. You have the right to an attorney. If you cannot afford an attorney, one will be provided for you. Do you understand the rights I have just read to you? With these rights in mind, do you wish to speak to me?”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1) 묵비권(right to remain silent)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말 그대로 아무 말을 하지 않을 권리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는 범죄의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피고인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필요 없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검사가 모든 입증책임을 부담하고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피고 본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입을 다문다면 (물론 아주 드문 경우다) 검사로서는 범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모든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음을 고지. 위에서 말한 묵비권 행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만약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고, 경찰에게 어떠한 진술을 한다면 그것이 나중에 법정에서 본인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나서 경찰이 "밥은 먹었냐?"라고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질문을 했을 때 피고가 "네, 맥도널드에서 점심 먹었어요"라고 했다 치자. 만약 피고인이 당일 점심때쯤 맥도널드에서 마약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면? 피고는 여지없이 본인이 점심 무렵 맥도널드에 있었다는 것을 시인함 셈이 된다. 만약 묵비권을 행사했다면, 경찰은 피고인이 점심 경 맥도널드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당시 목격자를 수소문하거나 CCTV 기록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 단 한마디에 그럴 수고를 던 셈이다.
(3)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right to counsel).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체포 후 심문(custodial interrogation)"을 "변호인이 배석한 상태"에서 진행할 수 있는 권리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실제로는 범죄행위와 관련 없는 사소한 질문이라도 잠재적으로는 불리한 진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판단할 변호인이 심문 과정에서 개입한다면 피고인으로서는 경찰/검찰의 입증 부담을 가증시킬 수 있다. 또한 피고인의 금전적 여력이 없더라도 국가에서 변호인을 선임해줄 것이라는 고지도 함께 함으로써 누구나 이 헌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되지 않는다(Equity aids the vigilant, not those who slumber on their rights)"라는 말이 있듯이, 미란다 원칙에서 제시하는 이와 같은 헌법적 권리도 본인이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하면, "묵비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경우 직접 경찰에게 분명하기 본인의 의도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반드시 경찰이 "이 피고인은 묵비권을 행사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심문을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저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라고 분명히 전달하고 나서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마찬가지다. 조사를 받은 피고인이 "변호인과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은 "변호인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정도로는 확실한 권리행사의 의도를 표현하기에 부족할 수도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루지애나에서 조사를 받은 D의 사건 쟁점이 바로 이것이다. D가 "Iwant a lawyer dog"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심문을 그만두고 변호인을 구해주는 대신, 계속된 심문을 통해 결국 피해자의 자백을 받아내게 된다. 피고인 변호사는 이를 두고, 경찰이 미란다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지애나 대법원은, "I want a lawyer dog"이라는 피고인의 진술이 변호인을 원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의 유죄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판결인지 알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사실 lawyer와 dog 사이에 콤마(,)가 들어가야 한다. 왜냐면 dog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buddy의 의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I want a lawyer, buddy (이봐, 나는 변호사를 원한다고)"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해당 발언이 말 그대로 피고인이 "변호인 개"를 원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시" 피고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요구했다고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법원 입장에서 이미 유죄를 인정한 핑곗거리를 찾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측컨대 피고인은 다음 상급 기관인 연방 대법원에 항고해서 주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으려 노력할 것이다.
해당 루지애나 법원의 판단은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었고, 많은 이들의 조롱과 놀림거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관련 meme (일종의 합성물/패러디)를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로 위의 문장 중에 Sixth는 Fifth로 수정되어야 한다. 수정헌법 제5조와 6조에서 모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미란다 원칙과 관련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수정헌법 제5조에서 비롯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6조는 기소 이후 단계에서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