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실제 이방인의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어느 날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문득 부모님께서 "이방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부부 생활을 상상한다고 하시는 얘기를 듣고, 이방인이라는 방송을 찾아보게 되었다. 교포인 아내와 결혼해서 미국 이민자 생활을 하는 나도 이 "이방인" 범주에 들기도 하고, 한국 방송의 관점에서 보는 미국 생활은 어떤가 싶어서 며칠 간격을 두고 아내와 이방인을 정주행 했다. 이번 포스팅에는 해당 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각 커플(추신수, 서민정, 선우예권, 선예)들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 예정이다.
방송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
약간 "슈퍼맨이 간다"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단지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남편의 육아 비중이 없거나 아주 적다는 것이 다를 뿐. "슈퍼맨이 간다"는 표면적으로 육아를 보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육아의 어려움/고충을 보여주면서 간접적으로는 상류층(연예인 및 운동선수 등)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관음증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출연자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내용이 아니고, 종종 출연자들의 미숙하거나 잘못된 육아 모습도 같이 공개함으로써 어느 정도 교훈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방인"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출연자들이 미국 상류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추신수, 서민정 가족은 확실히 어느 기준으로 봐도 미국 상류층이고, 선우예권과 선예는 기준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다를 순 있다) 거기에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해외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서민정의 경우,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뉴욕 맨해튼 생활을 하고 있는데, 방송에서도 이를 대놓고 부각하는 점을 보면 연출진이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의 상류층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충족시켜주려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예를 들어, 서민정 가족이 루프탑에서 저녁 먹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든지, 추신수가 사는 집의 규모와 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한다든지 하는 부분)
하지만 "슈퍼맨이 간다"와 마찬가지로, 출연자의 애환과 미숙한 모습도 같이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서민정이나 추신수가 인종차별을 받았던 일, 혹은 영어를 잘 못해서 오해를 받는 일, 선우예권의 허당끼를 강조하는 것 등이다.
내가 이 방송에 대해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다. 즉, 시청자들이 이방인에 나오는 극히 일부 이민자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미국에 사는 대부분 다른 이민자들도 비슷하게 살 것이라는, 혹은 그들의 겪는 애환과 서러움이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래 각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다루면서 이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해볼 예정이다.
우선, 추신수 가족
내 생각에 가장 이상적인 이민자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추신수가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넘사벽 급의 재력과 덩치(!)를 가졌다는 것 차치하더라도, 말 그대로 자기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성공적으로 미국에 정착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 여사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영어도 능숙하고,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거라는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텍사스에서도 아시아인으로 전혀 꿀리지 않고 살아간다. 사실 이쯤 되면 백인사회에 편입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이미 텍사스 전역에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 백인들이 추신수와 친하지 못해 안달 났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녀 양육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명 모두 한국어/영어를 잘 구사하며(한국어 발음을 조금 더 개선할 필요는 있어 보이지만),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를 적절히 잘 흡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셋다 나이가 더 들어 청소년/성년기를 거치면서 자아에 위기가 올 수 있겠지만 부모가 현명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민정 가족
가끔 서민정이 조금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는데, 전반적으로 화목하고 즐거운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서민정은 영어도 잘하고 미국인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자신감이라든지 미국 특유의 뻔뻔함(?)이 부족해 보이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남편도 교포 치고는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유한 편이라서 서민정을 대변해서 막 나서고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남편이 처음에는 무제한적 아마존 사랑(일명 "택배 요정")때문에 조금 비호감으로 보였는데, 가면 갈수록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은근히 호감형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교포라 그런지 한국에서 자란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 때 묻지 않은 점이 있다.
자녀 양육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양육이라고 보다는 혼자 잘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서민정이 방송해서 토로했듯이 외로워서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다 보니, 아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조금 속된 말로 하면 "애늙은이") 면이 좀 있긴 하다. 맨해튼에서 자라서 그런지 눈치도 빠르고 두뇌회전도 좋은 것 같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추신수 딸 같이 좀 더 천진난만하고 어리광도 부리는 어린아이 다웠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우예권
사실 선우예권은 조금 포지션이 애매하다. 해외에 정착한 이민자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거의 항상 투어 때문에 해외를 순방하기 때문에, 가끔 호스트 가족과 머무르는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방랑인" 혹은 "유랑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까? 호칭이야 어쨌든, 미국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영어도 잘하고 문화에도 익숙한 것 같다. 그런데 예술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그런지 세상 물정에는 조금 어리숙한 면이 있는데, 이 부분이 종종 매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출연한 이유가 왠지 홍보를 통한 인지도 높이기와 짝 찾기(?)라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항상 모든 행동이나 말은 그런 관점에서 해석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건실한 모습으로 열심히 목표를 향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연애든 커리어든 모두 잘되었으면 좋겠다.
선예
이 가족은 방송 횟수가 적어서 아직 딱히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을 얘기해 보자면, 일반적인 평범한 미국 이민자 가정의 모습에 근접한 가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예가 유명 걸그룹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은퇴했고, 남편도 종교인 집안인 것을 보면 추신수나 서민정 가족만큼 부유하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냥 검소하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방송 분량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세 가족 통틀어 조금 아쉬운 점은 하원미, 서민정, 선예 모두 육아와 가사에 집중한 나머지 본인의 삶과 사회생활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장보는 일을 빼곤 (시간 여유가 있더라도)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육아와 가사노동이 힘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긴 하지만, 미국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곳인 만큼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외에도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한국인 이민자의 모습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 출연자는 꼭 유명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도 동시 연재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