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의 보람과 기쁨 그리고 감사함
2016년 3월부터 공식적으로 변호사가 된 이후, 경험도 쌓을 겸해서 가급적이면 많은 무료법률활동(pro bono activity)을 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했던 시민권(귀화 naturalization) 신청 클리닉도 그중 하나이다.
미국인으로 귀화하는 사람들은 보통, 비자로 미국 방문 -> 영주권 취득 -> 시민권 취득(귀화)의 절차를 거친다. 시민권 신청 클리닉은 영주권자들의 시민권 신청을 도와주는 행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현재 영주권자이고 추후 시민권을 획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업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변호사이긴 해도, 나중에 내 시민권 신청을 하게 된다면 별도로 이민법 전문 변호사를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법을 다루게 되면 될수록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내가 하고 있는 형사법처럼 말이다. 형사법상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드물지만) 사형 혹은 징역이다. 이 모두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국가가 쉬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형사 체제가 구축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법체계와 실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개인이 이런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흔히 아무런 장비 없이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이론상으로 운이 엄청나게 좋으면 지뢰를 안밣고 통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은 것처럼 말이다) 변호사는 지뢰탐지기(법 지식)와 지뢰밭 통과 경험(심지어 본인이 지뢰를 밣아본 경험도 많을 것이다)으로 의뢰인을 돕는 셈이다.
이민법상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추방(=징역) 혹은 영구 입국 금지(=무기한 징역, 혹은 사형)이다. 미국인이야 징역은 살다오면 다시 나오는 것이지만, 이민자에게 추방은 삶의 터전, 가족, 친지, 친구를 모두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쩌면 단순한 징역보다 더 무서운 처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에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있어도, "미국에 이민할 권리"는 없기 때문에 형법상에 명시된 여러 가지 기본권(예를 들어, 수정헌법 제6조에 명시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수많은 저소득국가 혹은 개발도상국 출신들이 몰려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이민을 하고자 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국 이민법은 기본적으로 이민 신청자의 이민 의도라든지 사실 관계가 거짓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이를 최대한 걸러내기 위한 방향으로 발달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법 체제는 형사 법체제만큼 복잡하고 까다롭게 구성되어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시민권 신청은 모든 이민자들에게 꿈과 희망이다. 시민권자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추방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형사법으로 비유하자면 국회의원이 되어 불체포/불기소 특권을 누리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시민권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투표의 권리와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시민권 신청서(N-400)는 20페이지가 넘는 복잡한 서류이다. 물론 이러한 고귀한 권리를 정부에서 그냥 줄리 없다. 철저한 심사를 거쳐서 그동안 해당 이민자가 불법(특히 이민법 위반)을 저지른 적이 없는지 확인하고, 좋은 도덕성(good moral character)을 지닌 지를 확인한 이후에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시민권 신청서가 단순히 여러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그치는 것이 아닌 이유이다. 즉,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질문(최근 5년간의 근무기록, 거주지 기록 등)의 내면에는 해당 이민자가 이민법상 합법적으로 비자를 취득했고, 시민권 충족요건이 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변호사 없이도 할 수 있다. 원래 문제없는 지원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정상인 절차이다. 그러나 이민법이 워낙 복잡하고, 본인의 지원서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일반인이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어 변호사들이 필요하다.
내 역할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지원자가 작성을 완료한 신청서를 검토하는 것이다. 즉, reviewing attorney인 셈이다. 신청서를 받으면 법률적 지식이 없는 자원봉사자가 포스트잇으로 노트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확인해서 추후에 문제가 될지 아닐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지원자의 과거사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듣게 된다. 지원자의 최초 이민 동기, 가족, 결혼, 이혼, 자녀, 직장, 거주지 등을 자세히 듣다 보면 한 개인의 인생사를 요약하게 된다. 지원서에는 단순하게 숫자로 쓰인 기간이지만, 그 사람이 지나온 날들과 거쳐온 인생을 상상해보면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음을 알게 되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매일 아침 들리는 커피숍 바리스타일 수도 있고, 내가 자주 가는 식당의 주인일 수도 있고, 내가 사는 지역 주정부 임원일 수도 있다. 이민자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미국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이민자이지만 본인이 대놓고 이민자라고 밝히거나 묻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다)
무료법률 자원봉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변호사의 역할과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큰 보람을 얻기도 한다. 평소에 국선 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의뢰인들이 우리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무료법률 자원봉사를 하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분들이 손자뻘 되는 나에게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하고 손을 잡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들을 자주 뵐 수 있다. 변호사의 길을 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법률봉사를 하고 싶다. 물론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보람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