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에 소속되어 일하는 변호사는 약 4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는 한국 변협에 등록된 변호사 숫자보다도 많은 수인데, 과연 그 많은 변호사들은 무슨 일을 할까? 물론 모든 변호사들이 하는 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일단, 나는 우리 기관 법무실에 속해 있다. 미국 법무실은 보통 Office of General Counsel (줄여서 OGC)이라고 하는데, 흔히 한 조직의 최고 법무 임원 혹은 수석 법률 고문인 General Counsel (줄여서 GC)의 사무실이라는 개념이다.
그 법무실 안에도 여러 가지 세부 부서가 나눠지는데, 이건 기관마다 조직마다 다르다. 나는 그중에서 조달 사기(procurement fraud)를 담당하는 부서 소속 변호사이다. 즉, 우리 부서는 말 그대로 정부를 상대로 물품이나 서비스를 납품하는 업체(contractor)가 사기 및 기만행위를 할 경우, 이에 대해 적절한 행정적 조치를 취하고, 외부 사법 기관과 연계하여 민사나 형사로 사건을 넘기기도 한다.
이 중에서 행정적 조치라는 것은 해당 업체에 입찰 정지 및 금지 등의 제재(suspension and debarment)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입찰 정지(suspension)는 특정 사기 행위가 있다고 의심되는 업체를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1년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 정지시키는 것이고, 입찰 금지(debarment)는 사기 행위가 밝혀진 업체를 (일반적으로) 3년 동안 금지 시키는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영업의 매출 비중이 대부분인 업체에게 이러한 입찰 정지·금지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데, 왜냐면 한 기관으로부터 입찰 금지·정지 처분을 받으면, 해당 업체는 그 어떤 미국의 정부기관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업체에게 치명적인 제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SDO (Suspension and Debarment Official)이라는 높은 분(?)만이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각 기관마다 역시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수석 법률고문인 GC나 부수석 법률고문인 DGC (Deputy General Counsel) 들이 결제 권한을 가진다. 우리 부서는 정확히 말하면 SDO 직할의 법무팀인 것이다.
우리 부서 변호사들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SDO의 이름으로 내려지는 기관 차원에서의 결정문(agency decision)을 작성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법원에서 로클럭으로 근무할 때, 판사님을 대신해서 판결문을 쓰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최종 서명인은 우리 SDO이고, 해당 결정문은 우리 기관의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가 없다.
대게 이러한 결정문은 간단한 건 10장, 복잡한 건 30장(single space)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러한 결정문의 근거가 되는 행정 기록(administrative record)은 최소 수백 장, 많게는 수천 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많은 기록들을 일일이 다 읽어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결정문에서 인용하는 서류나 자료는 꼼꼼히 확인해서 그 인용한 내용이 왜곡되지는 않은지,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인용 규칙(Bluebook)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결정문의 법적 논리가 적절하지 않거나, 혹은 사실 관계를 잘못 인용하게 되면 나중에 업체가 이에 대해 연방 법원에서 이의 제기를 할 시 해당 결정이 파기 및 환송될 수 있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확인을 거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초안부터 시작해서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여러 명의 변호사가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나는 아직 부서에서는 연차가 낮은 편이라 모든 결정문의 초안을 맡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양식이 있지만 사건마다 사실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절반 이상의 내용은 내가 직접 작성을 하게 된다. 가끔 운이 좋은 경우에는 지역 사업부 소속 변호사가 초안을 어느 정도 작성해서 우리 본사 팀에게 보낼 때가 있는데, 이때는 주로 편집 및 퇴고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 편집 및 퇴고 과정이 가장 즐겁고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글을 계속 고쳐 나가면서 논리나 표현을 매끄럽고 다듬고, 문장 기호나 양식을 일관성이 바꿔나가면서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 기분이랄까? 처음엔 거친 나무토막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모난 부분을 깎다 보니 날카로운 부분이 사라지며, 매끄럽고 휘두르기 좋은 방망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다.
아무튼 그렇게 나름대로 내가 완성한 초안을 동료나 상사 변호사들에게 보내서 검토를 부탁하면 여기저기 잔뜩 빨간 줄(정확히는 Track Changes)로 피드백을 받는다. 그러면 추가 법률 리서치를 하거나 기록 검토를 한 뒤 내용을 보강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작성한 초안이 다듬어지면서 조금씩 결재라인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SDO가 서명을 하면, 기관 차원에서의 정지 및 금지 결정이 내려지고, 이는 미 정부 공통 입찰 정보 사이트인 SAM (System for Award Management)에 등록이 된다.
이것이 끝이냐? 사건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특정 업체나 인물의 사기나 기만행위가 클 경우, 이는 형사 처벌 및 민사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나 민사 사건으로 넘어가면 일단 법무부(DOJ) 소속 변호사가 이를 담당하게 된다. 이 때, 우리 기관은 법무부 소속 변호사들에게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법무부 소속 변호사들은 대부분 모든 종류의 사건들을 다루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루는 입찰 관련 비리나 사기 사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의 역할은 법무부 소속 변호사가 최대한 소송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주요 법률적 쟁점에 관한 리서치를 제공한다든지, 유용한 사실 관계를 요약해서 보내준다든지 하는 일을 한다. 물론 법무부 변호사들이 작성하는 의견서(brief)에 대한 피드백을 준다든지 혹은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한다.
써놓고 보니 그다지 재미없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꽤나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 조달 시장에서 불량 업체를 걸러냄으로써 국민들이 낸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내가 공공의 이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퇴근할 때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일요일 밤마다 월요일 아침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