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무원의 채용절차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려면 공무원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응시하는 급수에 맞춰 공부를 한다. 특히 행시라고 불리 5급 공무원 채용시험은 한 때 사법고시, 외무고시와 더불어 3대 고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최근에는 사시가 없어지고, 외무고시도 명칭과 절차가 꽤 바뀌긴 했다)
그러나 미국은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된다는 개념이 없다. 일반 기업처럼 이력서 검토와 면접을 통해 채용이 진행된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도 채용하는 곳마다 천차만별이다.
한 예로, 필자는 얼떨결에(?)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검사직에 지원한 적이 있다. 당시 새로운 페어팩스 카운티 검사장이 선출되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검찰 인사개편이 단행될 예정이었다. 나는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내가 알고 지내던 다른 개업 변호사가 검사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변호사를 법원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그 친구가 혹시 검사 업무에 관심이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려해보겠다'라고 했고, 그러자 그 친구는 내 이력서를 자기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호기심으로 이력서를 보낸 후 며칠 뒤, 인터뷰가 잡혔다. 인터뷰 장소는 놀랍게도 검사실이 아니고, 부 검사장이 될 사람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그 사람은 법원 근처에서 개인 사무실을 열어서 형사 사건을 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부 검사장으로 발탁이 되었다. 아직 공식으로 검사장이 취임을 하지 않아서 임시로 해당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도 매우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당시 나는 오퍼를 받지 못했지만, 해당 검사실의 채용이 상당 부분 이런 식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조금 더 절차가 공식화되었다.
연방정부 공무원 채용은 조금 더 엄격한 절차를 따른다. 우선 거의 대부분의 연방정부 채용공고는 공식 채용 사이트인 usajobs.gov이란 곳에 올라온다. 물론 일부 정부기관은 이곳 외에 채용공고를 올리는 곳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거의 usajobs.gov에 채용공고를 올린다. 이곳에서 각종 채용공고를 검색해 볼 수 있는데, 자신이 취업을 원하는 직렬번호를 알아야 검색이 쉽다. 참고로 변호사 직렬은 0905이다. 더불어 법무부, 상무부, 국방부 등 자신이 원하는 특정 기관을 위주로 채용공고를 찾아볼 수 있다.
원하는 채용공고를 찾았으면 지원에 필요한 서류 목록을 확인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력서(resume), 로스쿨 성적표(transcript), 라이팅 샘플(writing sample), 변호사 자격증(proof of bar membership) 등이다. 경우에 따라 커버레터(cover letter)를 요구하는 곳도 있지만, 웬만한 경우는 없어도 된다. 이 중 이력서가 가장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력서의 내용에 따라 서류심사 결과가 갈리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채용에 필요한 이력서는 일반 사기업이나 로펌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이력서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usajobs.gov에서 제공하는 federal resume 양식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일단 지원서를 보낸 뒤에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연방정부 채용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그만큼 불확성도 크다. 서류를 보낸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화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지원한 뒤 몇 년 후에 인터뷰 요청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일반적으로 경력이 채용 공고에 부합하는 경우, 소위 referral notice를 이메일로 받게 된다. 그 말은 자신의 경력이 해당 직종에 필요한 최소 요건을 충족했으며, 인사 담당자가 직접 서류를 검토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뒤로 또 한 없이 기다리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내 경우는 보통 referral notice 받은 뒤 1~3개월 뒤) 연방정부 공무원 인터뷰는 일반 사기업 인터뷰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모든 지원자에게 동일한 인터뷰 질문을 물어본다는 것이다. 이는 채용의 공정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 질문은 특정 지원자의 경력에 관한 것보다는 해당 직종에 필요한 능력과 스킬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다.
예를 들어, 일반 사기업의 인터뷰는 "20XX 년에 XX에서 근무를 하셨네요? 거기에선 어떤 업무를 했고, 무엇을 배웠나요?" 같은 식의 질문이 흔한데, 연방정부 인터뷰는 "XX 법 관련 업무를 다뤄본 경험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라는 식이다. 답변을 하고 난 뒤에도 사기업 같은 경우에는 추가 질문이 이어지는데, 연방정부 인터뷰는 추가 질문이 거의 없다. 즉, 사기업 인터뷰는 티키타카가 이뤄지는 대화형식이라면, 연방정부 인터뷰는 조금 더 딱딱한 질문·답변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내 경험상 연방정부 인터뷰에서 자주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 사유
-자신의 장점과 단점
-본인이 다뤄본 가장 어려웠던 법정 쟁점
-자신의 법적 의견이 상사와 다를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고위 공무원이나 어려운 의뢰인을 상대해 봤는지
-5년 뒤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인터뷰 횟수는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1회~3회 정도로 나눠진다. 보통 1회인 경우에는 보통 2~3명의 패널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지고, 여러 회차로 나눠지는 경우에 1회~2회는 보통 실무자급/중간 관리자급이고, 최종 면접은 법무실장(General Counsel)급 인터뷰가 진행된다.
만약 인터뷰가 끝난 뒤 자신의 reference가 컨택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오퍼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연방정부 채용 절차에서는 총 두 가지의 오퍼가 있는데, 하나는 TJO (Tentative Job Offer)라는 임시 오퍼이고 나머지는 FJO (Firm Job Offer)라고 불리는 최종 오퍼이다. TJO를 받은 뒤에는 신분 조회와 소변 검사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특히 기밀 서류를 다루는 직종의 경우, 해당 기밀 서류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신분 조회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데, 이 절차가 꽤 오래 걸릴 수 있다.
여러 가지 추가 서류 제출과 신원조사 등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 FJO를 받고, 대개 이 FJO에는 첫 출근 날짜가 같이 표시되어 있는데, 본인의 상황에 따라 이 날짜는 연기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이라, 마지막 재판일정 때문에 출근 날짜를 약 한 달 동안 미룰 수 있었다.
이후 직속 상사와 이메일을 통해 첫 출근날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전 조율을 하게 된다. 첫날은 방문객 신분으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증과 기타 서류를 준비한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가서도 여러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Appointment Affidavit이라고 해서 일종의 공무원 서약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I will suppor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against all enemies, foreign and domestic; that I will bear true faith and allegiance to the same; that I take this obligation freely, without any mental reservation or purpose of evasion; and that I will well and faithfully discharge the duties of the office on which I am about to enter. So help me God.
(미국 헌법을 모든 외부 및 내부의 적으로부터 지키고 옹호할 것이며, 그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충성심을 갖추리라고 다짐합니다. 이 의무를 어떠한 정신적 유보나 회피의 의도 없이 자유롭게 수행할 것을 약속하며, 내가 들어갈 직무를 성실히 하고 충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서약을 마치면 정식으로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