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r 29. 2024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8)-로스쿨 생활

로스쿨이란 이름의 값비싼 영어학원

농담이 아니다. 내가 로스쿨을 입학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동안 갈고 닭은 영어 실력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원어민에 근접한 고급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어떻게 보면 미국 로스쿨은 나에게 아주아주 비싼 영어학원의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졸업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부가적(?) 혜택도 있다)


그래서 나는 로스쿨에서 보내는 일분일초의 기회를 모두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법률 용어는 어떻게 보면 원어민들에게도 낯선, 새로운 언어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적절한 접근 방법이었다.


1. 로스쿨 1학년 시절: 인풋에 집중하다.

로스쿨에서는 판례(case law)를 통해 일반법(common law) 개념을 배우게 되는데, 특정 법 개념의 정의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예를 들어, 민사 소송법(civil procedure)에서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관할권(jurisdiction)이란 개념 하나를 정의하는데 전체 학기 중의 상당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이 관할권의 성립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또 세부적인 개념에 대한 정의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법적 분석의 기본은 특정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속하는 사실 관계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판례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영어에서 어휘를 공부하는 과정과 매우 비슷했다. 새로운 영어 단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어감 등을 공부하고, 해당 단어의 용례를 자주 접하면서 그 단어의 정확한 범주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 실력은 어휘가 뒷받침하듯이, 법적 사고능력은 결국 법률 용어의 각 개념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나는 미국 로스쿨 공부의 상당 시간(특히 1학년)을 암기에 투자했다.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암기하는 수준이 아닌, 로스쿨에서 배우는 법률 개념들을 직접적으로 머릿속에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는데, 하나는 복잡하고 난해한 법률 개념을 그대로 머릿속에 암기함으로써 해당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나머지는 덩달아 법률 작문에 사용되는 영어 구문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각적/촉각 학습자(visual/tactile learner)이기 때문에, 암기를 할 때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암기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길이 잘 든 만년필로 각종 법률 개념을 쓰면서 외우고 있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학교 짐(gym)에 가서 운동을 할 때는 로스쿨 강의 청각자료를 들으며, 입으로 쉐도잉(shadowing)을 하며 암기를 했다. 특히 이 청각 자료는 거의 평소에 음악 듣듯이 자주 들어서, 어느 순간 각 챕터 도입부에 나오는 효과음만 들어도 해당 챕터의 내용을 입으로 술술 따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2. 로스쿨 2학년~3학년 시절: 글쓰기에 집중하다.

로스쿨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멘토의 조언에 따라 글쓰기에 집중했다. 위의 방법으로 로스쿨 1학년에서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상위권 학교로 편입까지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내 글에서는 외국인 냄새가 강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2학년~3학년 시절에는 1학년 때만큼 성적에 대한 부담이 덜한 시기였던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마다 영어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 작문 공부를 했다. 그때 내가 사용한 교재는 프랙티쿠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Advanced VOCAB이란 책이었다. 원래는 어휘 실력을 꾸준히 늘리기 위해서 구매했던 책이었는데, 정착 이 책에서 가장 도움 됐던 부분은 각 단어의 용법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된 문장들이었다.


Advanced VOCAB (사진 출처: 교보문고)


나는 이 책을 공부할 때, 각 단어에 해당하는 영어 예문을 손이나 종이로 가린 채, 한글 해석을 먼저 보고 나름대로 작문을 해봤다. 그다음에 실제 저자가 쓴 영어 예문과 내가 쓴 작문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왜 그런 차이가 났는지, 다음에는 어떤 점을 다르게 해야 할지에 대한 분석을 했다. 이 책의 저자가 미국 변호사 출신이어서 그런지 법률과 관련해서 고급진(!) 주옥같은 표현들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됐다. 로스쿨 2~3년을 보내는 동안, 매일 아침 최소 1시간 정도 투자해서 이 책에 있는 모든 예문을 직접 작문했다. 1회 차를 끝내고 2회 차로 같은 작업을 반복했을 때는, 눈에 띄게 작문실력이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 로스쿨 밖에서: 네트워킹을 영어회화 연습의 기회로 활용하다.

로스쿨 2~3학년 때는 네트워킹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는 장차 구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영어회화 실력을 늘리기 위한 것도 있었다. 특히 내가 편입한 조지타운 로스쿨은 워싱턴 디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거의 매주 지역 법조인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주 한 번씩은 학교 외부 행사에 꼭 참석해서, 선배 법조인들과 대화할 수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만 자라왔기 때문에, 서양식 네트워킹 행사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왠지 거기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친한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나만 왠지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막상 행사에 갔다가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여기저기 겉돌다가 그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은 채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서는 극 I인 내 성격도 한몫했고, 다른 사람이 내가 영어 원어민이 아닌 것을 알게 될까 봐 왠지 두려운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이유이긴 하다)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꾸준히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3학년 때가 됐을 때쯤 조금씩 네트워킹 행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인데, 원어민들도 은근히 네트워킹 행사에서 불안함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알고 나니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네트워킹 행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대화가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있다는 배웠다. 대화의 진행 방향이 더 이상 주관식이 아닌, 몇 개의 선택지 중에 적절한 답변과 질문을 고르면 되는 다지선다라는 것을 알고 나니 훨씬 부담이 덜했다.


이렇듯 로스쿨 3년간의 생활은 엄청난 수업료를 내면서 그 어떤 영어 학원보다 빡센(?) 스파르타식 영어 공부를 했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내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을 했고, 원어민은 아니더라도 원어민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나의 영어 공부는 과거 완료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변호사가 되고 난 뒤에는 어떤 식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공부했는지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후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9)-변호사 생활"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변호사의 영어 고군분투기(7)-로스쿨 입시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