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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Jul 08. 2018

내가 들어가 있기만 하면 돼

친해져가는 과정의 거친 당혹감에 대하여.

올 봄 인사 이동이 있었다. 나는 근무지를 옮겼고, 보직이 변경되었다. 많은 양의 업무보다 몇몇 '소통불가자'들에게 지쳐있던 나는 5년간 근무했던 곳을 미련없이 떠나 새로운 곳으로 정신없이 옮겨갔다.


하여 요즘의 나는 그간의 나와 조금은 다른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근무지를 옮기니 이전 직장 동료들과 이런저런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일평생 모임이란 게 없던 나였는데 마음이 맞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니 신기하고 좋았다.

마음 한 켠에
'왜 나의 지나온 삶에 이런 인연이 없었던걸까? 못 만난걸까...?못 만든걸까...?'

하는 자괴감이 20대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음은 애써 부인하지 않겠다.


그 곳에서 근무했던 5년간, 가깝게 일했던 사람들이 매년 조금씩 달랐기에 1~2명씩의 차이로 비슷비슷한 모임이 단번에 3~4개나 생겼다.

나 하나의 편의를 위해 그들을 어색하게 통폐합 할 수 없어서, 모든 모임들을 따로 꾸려가다보니 은근히 평일 저녁이 바빠졌다. (새로운 근무지도 회식과 각종 비공식 번개 소모임이 많았다.)


모임은 참 좋았다. 지난 시간, 주로 업무를 하며 친해졌기에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고, 서로의 성향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대부분 공적인,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었던 우리는 좀 더 편안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예전엔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가 없어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근무지를 옮기고 나니 오히려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되었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동료들에게 조르기나 제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동료들을 불공평하게 대하거나, 지시나 강요로 느껴질까봐 돌부처처럼 말하지 않고, 입 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허나 이러다 보니 나는 은근히 또 지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깊이 신뢰하고 매우 좋아했지만 퇴근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말을 하고 듣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업무와 공적인 대화, 그로인한 스트레스로 완전 소진되어 늦은 퇴근 후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 못이뤘던 수많은 평일 저녁과 밤을 떠올렸다.
입에 거미줄 쳐질 것을 걱정하며 외로워했던 수많은 주말은 또 어떠했나......

내 마음 참 얕고 얇다.


당장 오늘만 해도 그렇다.
어제까지 난 바글바글, 와글와글 정신이 없었다. 업무가 아닌 사적 모임이었기에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내 사적인 영역을 살살 치고 들어왔다.

'아, 맞아. 친해진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지.'

내가 초대한 내 친구지만 내 방 문을 열고 내 방 안으로 훅, 들어올 때의 당혹감이었다.

딱 한 명만 열고 들어오면 조용하고 온전하게 그 한사람에게만 집중하고 그에게만 신경을 쓸텐데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여러명이라니. 심지어 이미 충분히 조심하고 있는 신중한 어른들(내가 고르고 고른!!!)인데도.

'그래 맞아. 어렸을 땐 아무리 많은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도 그냥 즐거웠지. 좀 큰 후엔 친구 한 명 집에 데려오기도 어려웠고.'


내 영역에 들어오는 당혹감뿐만 아니라, 내가 다가갔을 때 그들이 보여준 '그 사람 고유의 본질적인 모습' 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
이러면 안되지만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은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친해지는 과정이리라......

어제는 이 느낌들이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었는데(그들을 충분히 좋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종일 무료하고 심심하다. 혼자인 지금 이 순간이 좋지만 어딘가 적적하다. 하여 막연하게 누군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누군가를 불러내고 싶진 않다. 그냥 이렇게 축 늘어져있고만 싶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

이 까다로운 영혼아!


그래서 나는
나 혼자 듣는 라디오의 전원을 켰다.

분명 누군가 있을 거야.
내 말을 듣고 있을 거야.
나 혼자는 아닐 거야, 아무리 대답이 없어도.

대답은 없어도 돼.

사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

사람들이 있는 그 공간에 내가 들어가 있기만 하면 돼.




일요일도 마무리 되어간다.

내일, 나는 다시 밝고 씩씩하고 유쾌하고 즐겁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당차고 똑똑한데다 야무지기까지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공식적인' 내가 되어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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