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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20. 2020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연대할 수 있는 용기


에런 소킨이 각본과 연출까지 맡은 넷플릭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The Trial of the Chicago 7, 2020)'은 1968년 시카고에서 벌어졌던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 이후 시위 주동자 7명을 두고 열렸던 재판을 바탕으로 한다.


에런 소킨의 이 영화가 다른 일련의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재판 과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법정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정도로 재판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드러나는 극적 요소를 결코 부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내 불리하던 재판이 결정적 증인이나 증거를 통해 역전된다거나, 치밀한 전략을 통해 상대편이 생각지 못했던 완벽한 논리를 꺼내 들어 상대가 망연자실하고 마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설정이 등장한다고 해도 아주 소극적으로 다룰 뿐이다. 또한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 역시 가장 영화적으로 관객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이자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임에도 아주 소극적으로 묘사할 뿐이다. 회상 장면으로 등장하기는 하나 이마저도 최소한의 필요 정도로만 등장한다. 


그렇게 법정 영화만의 극적 요소도 최소한으로 절제하고 무력 충돌의 장면도 거의 재현하지 않음에도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2시간 반 정도의 긴 러닝타임 내내 흥미롭게 전개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시 미국 내 상황이나 실제 사건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배경 지식과 법정 드라마라는 장르적 쾌감 없이도 이 영화가 내내 흥미로운 이유는, 그 과정 가운데 에런 소킨이 주목한 핵심적인 갈등 요소 때문이다. 



일단 그에 앞서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1960~70년대 당시 미국 내 사법제도의 현실과 반전/좌파 세력을 억압하려던 지배 세력의 왜곡된 정치권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대한 당시의 제도 현실에 맞춰 합법적으로 재판에 대응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고단하고 허무한 결과로 매번 돌아오게 되는 무력함을 통해 시대의 현실을 비판한다. 아마도 이 과정을 통해 충분히 당시 대립하던 시대 가치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위대와 경찰 간의 직접적 충돌 장면의 묘사 없이도 어떤 가치들이 대립하고 있는지 쉽게 알게 된다.


당시 미국 사회가 어떤 시대를 통과하는 중이었는지, 그것이 현재 미국 트럼프 정부의 현실에 빗대어 어떤 점들을 시사하는지도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앞서 말한 다른 핵심적 갈등 요소다. 이 재판은 단순히 반전을 외치던 운동 세력과 정부 권력 간의 커다란 갈등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에런 소킨은 시카고 7로 불리던 각기 다른 반전과 민주화 운동 세력 간 갈등을 주목한다. 이 갈등은 단순히 당시 이들 만의 갈등은 아니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은 항상 현실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고, 방법론을 두고 어쩌면 더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겪게 된다. 더 강경한 방법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과 결과를 못 이루더라도 과정에 있어 조금이라도 잘못된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쪽 (그러면 우리도 비판하는 대상과 마찬가지라는 주장) 간의 갈등.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정의 흠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쪽과 실패한 혁명이라도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믿는 쪽 간의 갈등. 그러다 결국 서로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는 이 문제는 생각보다 아주 복잡하고 쉽게 결론 나지 않으며 어쩌면 영원히 화해하기 어려운 갈등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 갈등을 자연스럽게 이 재판의 한가운데로 가져온다.


정부에선 그저 불온하고 저열하고 위험한 단체로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이루고자 하는 바는 유사할지언정 각기 다른 방식을 꿈꾸던 이들 각각의 이야기를 오히려 짧다고 할 수 있는 2시간 반의 러닝 타임 내에 효과적으로 설명해 낸 각본이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서로 방식은 다르더라도 서로를 위해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의 용기는 (이 극적 요소는 실화라는 점에서 더 힘을 얻는다) 지금의 트럼프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러닝 타임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에런 소킨의 수준 높은 각본과 더불어 여러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때문이다. 매번 다른 작품을 통해 영롱한 눈빛과 얼굴로 선함을 주로 연기했던 에디 레드메인은 이 영화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예고편에서 등장했던 그가 낯설게 느껴졌던 것과는 달리, 에디 레드메인은 이런 결의 캐릭터에도 제법 잘 어울렸다. 이 이야기가 결국 각자가 믿는 가치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한쪽으로 기울 수 있었던 추를 대등하게 만드는 검사 역의 조셉 고든 레빗도 인상적이었고, 변호사를 연기한 마크 라이언스의 무게감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히피이면서 이들을 이끌던 선동가 애비 호프먼을 연기한 샤샤 바론 코헨은 다시 한번 그가 (이 훌륭한 여러 배우들 사이에서도) 정말 좋은 배우라는 걸 확인시켜 준다. 내내 유머와 웃음이 섞여 있던 그의 얼굴이 결연한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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