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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Sep 09. 2021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양조위가 있는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尚氣, 2021)

양조위가 있는 마블 영화


마블 코믹스의 장점은 다양성과 세계관이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서로 단단하게 또는 느슨하게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그리고 이런 장점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스크린 속 세계관에서 더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한 편으론 그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장면을 감상하기보다는 해석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더 많아진 듯한 단점도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의 재미다. 


다양성을 추구한 바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시절이었던 코믹스 발간 시점들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준이다. 백인 남성 중심의 서사가 주를 이루던 (특히 영웅 서사에서는 더욱)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종과 성별, 나이, 종교, 정체성을 가진 영웅들이 마블 코믹스에는 넘쳐난다. 최근 개봉한 마블의 신작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하 샹치)'도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문화에 기반을 둔 캐릭터와 세계가 중심이다.


할리우드에서 다른 민족, 특히 아시아인을 다룰 때 흔히 실수하는 선입견들이 있다. 외모에 관한 것이라던지, 역사에 관한 것도 그렇고, 설사 존경심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그 이해의 깊이가 깊지 않다 보니 같은 아시아인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어설프거나 간혹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샹치'는 그런 시선면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어떤 아시아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하고, 동경하는 마음은 느껴지지만 결과물에 대해 완전한 동의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오락영화의 측면에서, 또 MCU의 한 편으로서 '샹치'는 충분히 재미있다. 후반부의 액션 스케일이 이전과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우주적 존재가 다수 등장하는 MCU에서 이 정도의 신화적 스케일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스케일이 갑작스러웠다기보다는 빌드업 과정에서 주요 갈등 요소와 동떨어지는 설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만약 샹치의 아버지인 웬우 역할로 양조위가 캐스팅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샹치'는 다른 히어로 영화들이 1편에서는 영웅이 되어가는 서사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샹치와 아버지 웬우와의 갈등, 더 나아가 사실상 웬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새롭게 소개하는 캐릭터의 서사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의 서사 비중이 훨씬 더 높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요 갈등인 것이다. 이런 플롯이라면 마블 히어로의 첫 번째 영화로는 실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왜 이 영화가 재미있었고 그럭저럭 괜찮았느냐 그건 바로 그 웬우 역할을 연기한 배우가 양조위 이기 때문이다. 양조위.


처음 양조위가 마블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 이질감은 실제로 보기 전까지도 계속됐다. 하지만 이내 '와, 그럼 양조위 얼굴을 아이맥스로 볼 수 있겠네!' '와, 양조위 피규어도 나오겠구나!' 싶은 기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팬들 사이에서는 '양조위가 빌런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라는 합리적 의심이 지배적이었는데, 실제 이야기도 웬우의 갈등 요소가 아주 깊게 그려졌다. 이건 양조위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분명 단점으로 지적되었을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명한 단점이 있으나 그 단점 요소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 됐다. 양조위가 연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여러 MCU영화 가운데서도 아주 미묘한 지점에 놓인 영화가 됐다. 이야기나 메시지에 설득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캐릭터에 매료된 것도 아니고, 영화적 완성도에 반한 것도 아닌데도 양조위 때문에 묘하게 좋아하게 되어 버린 영화. 이게 다 양조위 때문이다. 



1. 양자경은 물론이고 예전 홍콩영화에서 자주 만나던 원화 배우를 볼 수 있어서 몹시 반가웠다. 배우들 외에도 영화 자체가 어린 시절보단 홍콩 무협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아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었음.


2. 웬우의 아내 역할을 연기한 진법랍 배우도 너무 멋있었는데, 이 캐릭터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옛날 사람은 임청하가 떠올랐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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