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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Oct 12. 2021

용과 주근깨 공주

스크린 너머 현실에도 그 간절함이 닿기를


용과 주근깨 공주 (竜りゅうとそばかすの姫, 2021)

스크린 너머 현실에도 그 간절함이 닿기를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몹시 야심 찬 영화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전작들을 떠올려 보면 이런 정도의 야심을 감독이 드러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용과 주근깨 공주'는 감독이 된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는 인터뷰처럼, 호소다 마모루 세계관의 이해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먼저 이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를 일종의 집대성하는 구조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생들의 세계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닮았고,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배경이 되는 메타버스 'U'의 세계는 '썸머워즈'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가족의 관한 시선과 묘사는 '늑대아이' '미래의 미라이'를 연상시킨다. 그저 기시감이 드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작들이 이 작품에 앞서 풀어낸 각각의 이야기 주머니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자가 복제는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세계를 집대성하는 구성이기 때문에 호소다 마모루의 거대한 야심이 엿보인 다는 것은 아니다. 구성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결합하고 있지만 놀라웠던 건 볼거리 측면이 아니라 감독이 선택한 메시지 혹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들을 보면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고(시달소), 이세계를 오가기도 하고 (괴물의 아이), 인간이 늑대 아이를 키우기도 하며 (늑대아이), 통신망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세상에서 분투하기도 한다 (썸머워즈). 그마다의 감동과 메시지가 있었지만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감독이 선택한 메시지는 조금 의외였다. 화려한 메타버스 세계 속이 아닌 그밖에 존재하는 어두운 현실을 비중 있게 주목한 것은 사실 조금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부정이나 긍정적인 반응 이전에 놀라움이었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호소다 마모루의 이전 영화들에서는 이 정도로 현실에 가깝게 접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판타지(사실 메타버스 속 이야기를 판타지로 보기는 어렵지만)가 뒤 섞인 이야기의 가장 끝에는 어두운 현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아동학대라는 사회문제를 주목한다. 조금은 갑작스러운 결말이었는데 이런 문제의식이 갑작스럽게 느낀 이유를 되짚어 보니 단순히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경향 때문 만은 아니었다. 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빌드업의 과정 중에 감독이 선택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 그 문제의식을 담아내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고?'라는 놀라움의 첫 번째 반응 뒤에는 '대단하다'라는 긍정적 느낌이 있었다. 항상 가족이라는 테마를 이야기해왔던 호소다 마모루에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과 아동에 관한 사회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세상이었을 거다. 그런 문제의식을 호소다 마모루 식으로 풀어낸 작품이 처음부터 만들고자 했던 이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문제의식과 연대의 메시지에는 공감하고 또 감동받았지만 조금은 설익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마무리로 치닫기 전에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메타버스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이는 실제 신분이 공개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를 집행하는 경찰 같은 조직도 있다 - 저스티스). 그래서 나중에 벨이 괴물을 돕는다는 이유로 저스티스에게 쫓기고 결국 현실의 존재가 발각되는 것에 강요를 받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괴물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모른 시점에서 벨 역시, 괴물에게 진짜 누구인지 계속 질문한다는 점이다. 앞서 저스티스의 행동이 폭력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건 더욱 동일한 의미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메시지가 충돌한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 괴물이 학대를 받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익명성을 스스로 버리거나 상대에게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 벨의 행동은 저스티스의 행동이 그렇게 묘사되었던 것처럼 동일한 폭력이라는 점을 지울 수가 없다.


더불어 강요와 응원은 정말 양면의 동전과도 같이 미묘한 차이로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됐다. 특히 이 이야기처럼 익명성이 현실에서의 떨어진 자존감과 부족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악용하지 않고) 방어 체계로 존재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 익명성의 포기를 타인이 (설령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는 응원의 메시지라 하더라도) 강요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강요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간과하고 있다. 영화가 그린 세계관이 하나의 논리로 설명되는 경우라면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겠지만, 앞서 말했던 저스티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영화의 시선, 그리고 주인공 스즈가 현실에서의 결핍과 아픔, 떨어진 자존감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 의미로 익명성이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익명성의 탈피에 대한 강요는 선의와는 다르게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용과 주근깨 공주'를 보고 난 뒤 계속 잔상이 남고 다시 보고 싶은 건 단지 압도적인 작화와 (이번에도 작화 수준은 대단하다) 인상적인 노래들 때문만은 아니다. 호소다 마모루 작품들 속 인물들이 항상 그러했듯, 한계와 맞서며 간절함을 넘어 이루려는 바를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던지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절로 두 손에 힘을 불끈 쥐게 된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와 연출이지만 한 편으론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가운데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늑대아이'를 제외한다면 가장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그건 영화가 담고 있는 간절함이 영화 속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스크린 너머 현실에까지 닿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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