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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un 21. 2023

엘리멘탈

이민자에서 독립된 존재로

© Pixar Animation Studios


엘리멘탈 (Elemental, 2023)

이민자에서 독립된 존재로


픽사의 신작 '엘리멘탈 (Elemental, 2023)'의 포스터와 분위기를 보고는 쉽게 오해했었다. 마치 전작 '인사이드 아웃'이 겹쳐지면서 불, 물, 공기, 흙 이렇게 4 원소의 캐릭터를 통해 각기 다른 세계 (작게는 인종이나 문화)를 서로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공기와 흙은 배경처럼 존재했고, 불과 물이 주인공인 이야기였으며 사실상 불로 대변되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미국 이민사 그 자체였다.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은 실제로 부모님 세대에서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 2세대인데, 그가 느끼는 이민 1세대인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2세대로서 자신이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서 미국 사회를 살아왔던 경험들을 '엘리멘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감독의 실제 경험과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에서 겪게 되는 일들이 아주 직관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의 확장성이나 입체적인 면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던 '인사이드 아웃'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갖고 있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 혹은 누구나 지나온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외국인 이민자의 이야기는 모두가 100% 공감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 관객인 나로서는 이 이야기가 미처 다 들려주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까지 느낄 수 있었기에 다른 픽사 영화들 못지않은 확장성이 있었다. 


© Pixar Animation Studios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민 1세대의 고생스러운 상륙기에 그치지 않고 2세대 만이 겪는 갈등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외국인(여기서는 한국인)으로서 부모가 태어난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물려받아 계승해야 하는 의무와 부담을 갖는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남들처럼 자유롭게 뻗어나가고픈 욕망과 뿌리로 인해 차별을 받게 되는 현실 속에, 미지의 땅에서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했던 1세대의 고생, 고민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민과 고생이 있다는 걸 주인공 앰버의 이야기를 통해 간결하게 표현해 낸다. 전체적으로는 이민 1세대인 부모에게 바치는 러브레터 성격을 갖지만,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물 원소 캐릭터인 웨이드와 그 가족에 대한 묘사였다. 보통 이렇게 서로 만날 수 없는 정반대의 인물이 등장할 때 두 주인공은 서로를 이해하고 원하지만,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일쑤다. 그래서 그 역경을 이겨내고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두 세계가 화해하게 되는 것이 보통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웨이드의 가족들은 자신들과 정반대라고 여겨지는 불 캐릭터인 앰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영화만 보자면 웨이드 가족들이야 말로 이 엘리멘트 시티에 가장 어울리는 이상적인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현실로 미뤄보자면 주류 백인으로 볼 수 있는 물의 주요 캐릭터를 이렇게 묘사한 건 현실에서도 이랬으면 하는 바람일지 아니면 감독이 미국 사회에서 겪은 친절한 백인들 덕인지 모르겠다 (만약 이 작품의 감독이 주류 백인이었다면 물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을 수 밖에는 없는데,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좀 생각해 볼 만한 캐릭터가 됐다).


감독이 겪었던 실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야기의 크기나 주제가 한정되긴 했지만 픽사의 영화들이 그렇듯 '엘리멘탈'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왜 계속 화가 나고 또 그 화를 번번이 참아내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앰버는,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깨닫게 되면서 결코 작지 않은 큰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비로소 홀로 독립하게 된 앰버는 그렇게 대체할 수 없는 원소(element)가 된다.


© Pixar Animation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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