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나아갈 누군가의 기원
한국에서 태어나 타국에서는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내가 미처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태어난 나라와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태어나 다른 피부색으로 인해 처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고 느끼며 성장하게 되는 건 필연적으로 수많은 이야기를(주로 고통스러운)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들었던 생각은 예전에 봐왔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다른 영화들이었다. 그동안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인, 일본인 1세대 혹은 2세대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한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흘러나왔다. 몇 년 전 아카데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대표적인 작품이었고, 최근 개봉한 앤소니 심 감독의 '라이스보이 슬립스 (Riceboy Sleeps, 2022)'도 그렇다.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감독 본인의 개인적 서사에 머물지 않고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이 영화의 몇 가지 유니크한 점 때문이다. 일단 16mm 필름 촬영을 통해 탄생된 아스라한 영상미와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영화음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론 거대한 이야기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서사로 작은 규모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신화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영상미와 음악의 영향이 크다. 촬영의 경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극 중 엄마인 소영과 아들인 동현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앵글)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극 중 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이 이야기에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그저 특별하다고만 느꼈던 카메라 앵글이었는데 감독의 의도를 알고 나니 또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항상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만들어 준 아버지의 존재는,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었다.
앤드류 용훈 리가 맡은 영화 음악은 드넓은 풍광을 신적인 존재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영상미와 함께 장엄함을 선사하는데, 용감한 시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한 때 테렌스 멜릭 영화에 영향을 받은 여러 영화들이 철학적이고 장엄한 시선과 음악을 과감하게 시도했었는데, 대부분의 결과물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심지어 테렌스 멜릭 본인도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영상미와 음악은 개인적 서사가 민족적 서사로 또 신화적 성격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로 이야기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이 음악에 압도되어 몰입되는 동시에, '만약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음악이 없었더라도 지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는데, 이 거대한 무드의 음악은 이 작품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재차 하게 됐다. 더불어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극장에서 볼 필요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역시.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 모자 관계를 다룬 영화들과 이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가 어느 한 켠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비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영과 동현은 이 이야기에서 어머니와 아들의 역할로 등장하긴 하지만 각자 그저 '소영'과 '동현'으로서도 충분히 존재한다. 특히 소영 캐릭터의 경우 그저 희생해 온 부모의 존재로서 그려지기 쉬운데, 희생해야만 했던 어머니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서사도 이 한 편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관객은 소영이라는 인물을 동현의 어머니로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이 이야기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동현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뿌리를 찾는 동시에 정체성을 찾는 과정인데, 많은 설명이나 구구절절한 갈등의 요소 없이 이 과정을 묘사하고 또 해결해 나간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수많은 대사와 대화로 갈등을 고조시키며 동현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소영과의 관계와 소영에게 벌어진 일로 인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동현의 이야기를 녹여낸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동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고민을 더 넓은 의미로 포용하며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 영화를 보며 유독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앞서 음악에 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만약 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만 보았다면 그 속의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후반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의 이야기들은 시나리오로만 접했더라면 조금은 갑작스럽고, 전형적인 과정으로 느꼈을 것 같은데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사로 미처 다 꺼내지 않는 감정들이 세밀하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평범한 대화들에 숨어 있는 깊이까지도 느껴졌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엔딩 크래딧이 끝날 때까지 의자에서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삶의 무게에 짓눌렸음에도, 극장을 나오고 소영과 동현을 떠올렸을 때 그들의 (앞으로의) 삶이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그저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영원히 남게 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