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랑할 수 밖에 없어
영화에 관한 영화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흥미롭다. 영화에 관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감독이 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밖에는 없고, 더불어 왜 지금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대답 역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많은 영화(감독)들이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말하곤 한다. 은유를 통해 영화를 완성하는 존재들과(감독, 배우, 관객 그리고 비평가들도 자주) 그들의 관계 설정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영화감독이나 배우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직접적인 방식으로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메타 영화는 구조적으로도 명확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분명한 편이라 텍스트로서 읽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본질적인 질문과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일종의) 장르다.
'라라랜드'와 '퍼스트맨' 등을 연출했던 데이미언 셔젤의 신작 '바빌론 (Babylon, 2023)'은 아주 직접적인 영화에 관한 영화다. 사실 그의 대표작인 '라라랜드'가 인상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한 때 할리우드의 대표 장르였으나 지금은(라라랜드 제작 당시는) 메인스트림에서 조금 멀어진 뮤지컬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더불어 오마주에 그치지 않고 고전들의 아쉬웠던 점들마저 극복하려 한 발 더 나아간 도전적인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바빌론'은 유사하게 변주되는 스코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묘하게 '라라랜드'를 자주 연상시키는 영화다. 하지만 '바빌론'이 가장 흥미로운 이유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해 왔던 이전의 영화의 관한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감상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내용은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데이미언 셔젤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아직 영화가 가치 있는 대중예술로 받아들여지기 전이었던 1920년대 초 무성영화 시절을 택한다. 이 시기를 택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영화라는 예술이 지금과 같은 대우와 인기를 얻기 이전, 그러니까 사막 위의 황량한 도시였던 L.A가 꿈의 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과 같이 영화라는 예술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절 만의 매력을 발견했고,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변화하던 극명한 시대적 대비와 그 가운데 영화인과 영화산업의 변화를 역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택했을 것이다.
배우가 대사를 직접 연기하지 않고 표정과 몸짓만으로 스크린에 표현되던 무성영화와 화면과 소리가 합쳐져 배우가 직접 소리 내어 대사를 연기해야 하는 흔히 토키(talkie)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성영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상대적 시선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바빌론'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바로 그 변화의 시점을 주목하며 매우 감정적인 방식으로 묘사한다. 무성영화 시절은 마치 공장처럼 (사실 보기에 따라 유성영화의 제작과정이 더 공장처럼 묘사된다) 한 번에 같은 장소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기도 하고, 체계라고는 없어 보이는 촬영, 제작 과정과 심지어 현장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비윤리적이고 대혼란 그 자체인 촬영현장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그리고 바로 그 정신없는 촬영현장은 더 난잡하고 비윤리적인 파티 현장과 그대로 연결되며 그 둘이 각자가 아닌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데이미언 셔젤의 시선이 흥미로운 건 이렇듯 무성영화를 둘러싼 현장과 인물들의 면면을 저속하고 혼란스러운 그 자체로 묘사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낭만의 시대 혹은 진짜 영화가 만들어지던 순간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촬영날 아침까지 난잡한 파티에서 진탕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모자라, 잠깐 눈을 붙이고 술이 덜 깬 상태로 나타난 촬영장에서 다시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만 카메라가 도는 그 찰나의 순간엔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마주했던 그 아름다운 장면을 마법처럼 만들어 내는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잭 콘레드(브레드 피트 분)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급작스럽게 캐스팅되어 무슨 영화의 촬영인지도 모른 채 오른 정신없는 촬영장에서 감독의 주문에 따라 눈물을 속도와 양까지 조절해 내며 감정을 만들어 내는 넬리(마고 로비 분)의 모습에서도 대혼돈 속 찰나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시대가 바뀌며 유성영화로 제작되는 현장을 담은 장면에서 더 도드라진다. 정신은 없지만 순간을 담아내던 유성영화와는 달리, 배우들과 스텝들이 동시에 소리를 영상에 담아내야만 하는 제약 탓에 제대로 된 자연스러운 연기도 하지 못하고, 촬영도, 녹음도, 모든 영역에서 제약과 한계를 겪는 과정은 그 답답함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오히려 기계적이고 불합리한 것처럼 묘사된다(심지어 무성영화의 정신없던 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성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죽음이 발생한다. 이건 단순히 유머로서 삽입된 에피소드라기보다는 감독의 시선(감정)을 더 확고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에서 감독의 분명한 의도가 느껴진다. 왜냐하면 무성영화의 촬영현장과 유성영화의 촬영현장 묘사는 '바빌론'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이 정돈되지 않고 난잡한 현장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당시 파티는 단순한 뒤풀이 현장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는 하나의 존재로 봐야 한다)과 비윤리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던 무성영화 촬영현장에 비해, 드디어 제대로 정리되고 존중받으며 체계적인 시스템하에 촬영되기 시작한 유성영화 현장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데이미언 셔젤은 분명히 무성영화 현장은 혼란스럽지만 낭만적인 것으로 묘사했고, 유성영화의 현장은 답답하고 기계적인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
데이미언 셔젤의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평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바빌론'이 흥미로운 건 이 영화 역시 감독이 무성영화의 시절을 그려낸 방식과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벅찬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3시간 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할리우드의 빛과 어둠을 그려내는데, 사실 자극적인 면으로 보나 물리적인 분량 측면에서나 어둠을 훨씬 더 짙고 깊고 극한으로 그려낸다. 무성영화 시절의 묘사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할리우드에서 영화 시장을 둘러싼 인물들과 여러 관계들의 묘사는 그 토양 위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모두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추악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량이 부정적인 어둠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그 찰나의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든 어둠을 희석하고도 남는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낸 영화계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며 빛을 내던 넬리를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매니(디에고 칼바)의 이야기는, 그가 자신의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 벅찬 감동으로 한꺼번에 (말 그대로) 쏟아진다 (매니와 넬리의 관계는 러브 스토리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매니가 동경하던 꿈 그 자체의 존재로서 넬리를 바라봤기에 지속되고 또 막을 내린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무성영화의 현장에서 반짝이던 마법 같은 순간에 반했던 매니의 모습 그리고 영화의 거의 마지막 '사랑은 비를 타고'를 관객들과 매니가 극장에서 보는 장면은 나에게 있어 이 영화의 모든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마법같이 아름답고 영화적인 (울컥하는) 또 다른 찰나의 순간이 됐다. 이 시퀀스에서 부유하듯 극장 내 관객들의 얼굴들을 담아내는 카메라 워킹은 다시 떠올려봐도 전율이 일고, '아! 데이미언 셔젤은 이 장면이 만들고 싶어서(이것으로 영화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길게 이어왔구나!'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올해의 장면이었다.
데이미언 셔젤은 '위플래쉬'에서도 '라라랜드'에서도 한 호흡으로 끝까지 몰아치듯 치닫는 연출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바빌론'의 마지막은 아마도 한계를 넘어 치닫는 그의 시퀀스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렬한 시퀀스가 아닐까 싶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영화에 대해 이토록 도전적이고 강렬하게 사랑 고백을 하는 감독이라면 그의 다음 작품도 기꺼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