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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an 19. 2023

더 글로리

복수 만이 나의 것

© Netflix


더 글로리 (The Glory, 2022)

복수 만이 나의 것


'엄마, 엄마는 내가 누굴 죽도록 때리면 가슴 아플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 아플까?'

언젠가 김은숙 작가의 고등학생 딸이 던진 질문을 듣고 작가는 순간 지옥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 지옥 같은 심정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바로 '더 글로리'다. 


그동안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물리적 폭력이 진행되는 학생 시절 당시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당시의 이야기를 다루게 되면 좀 더 구조적으로 활력을 띄게 되고 장르적으로도 (자극적인) 장점이 많아 주로 활용되곤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진행되는 당시의 이야기만 다루게 되면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되는데 거의 모든 학교 폭력의 상처는 학생시절에 머물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까지 계속 지속된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물리적인 폭력에서 그치지 않고 또 그것 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학창 시절만 해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야만과 폭력의 시대였고, 당시 학교폭력은 늘 가까이 존재했다. 연상호의 작품 '돼지의 왕'에서 잘 표현된 것처럼 이 당시는 학교폭력이 정말 만연한 시기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수가 직간접 가해자 또는 피해자였고, 거의 대부분은 학교폭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비겁한 방관자였다. 


꼭 선배가 아니더라도 같은 학년 (친구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다)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하면 가끔 '죽기 살기로 덤비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건 그렇게 단순하게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신체적 능력과 무리의 숫자로 인한 폭력이 전부였다면 앞서 말한 대로 죽기 살기로 덤비거나 더 많은 숫자로 대항하면 해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 한 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존재하는 수많은(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가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Netflix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더 글로리'는 바로 그 학교 폭력의 이면, 아니 진짜 얼굴을 그려낸다.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장르적으로는 복수극의 형태로 전개되는데 대부분의 복수극이 그렇듯 이 이야기는 결코 유쾌할 수 없을뿐더러 통쾌할 수도 없다. 간혹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그것이 피해자가 당했던 피해의 정도보다 더하면 더할수록) 복수를 행하는 과정을 통쾌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복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처럼 관객들이 누구나 이것이 판타지라는 걸 인지한 세계 위에서의 복수가 아니라면, 사실상 모든 복수극의 끝은 결코 통쾌할 수 없을 것이다. '더 글로리' 역시 1부에서는 아직 극 중 동은(송혜교 분)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될 2부의 끝에도 아마 통쾌함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1부에서 동은과 동은이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 속 작품의 시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동은의 복수는 선택이 아니라 피해의 결과라는 것. 그래서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고 그 끝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의 정해진 결말일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더 글로리'는 복수의 결과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수의 과정 속에서 동은이 겪게 되는 고통들과 당시에는 벗어날 수 없었던 폭력 가해자들의 하찮은 민낯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동정 없이 그들을 단죄하는 것에 있다. 아, 그리고 이미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현재를 살고 있는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다시 한번 불편하게 만드는 기능도 있다. 학생시절에 머무는 이야기였다면 '다 지난 일이잖아'라고 애써 웃어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현재의 이야기를 보고도 그저 지난 일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피해자에겐 평생 끝나지 않는 일이라는 걸 가해자는 반드시 알 필요가 있고, '더 글로리'는 (아마도) 가해자라면 조금의 공포나 죄책감, 아니 불편함 만이라도 느끼길 강요한다.


© Netflix


마지막으로 이 차갑고 건조하기만 할 것 같은 복수극에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피해자들의 연대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 동은과 가정 폭력의 피해자 강현남(염혜란 분)이 서로의 필요로 인해 연대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일단 폭력의 피해로 인해 복수 만을 꿈꾸며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동은과 그와는 달리 같은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라는 대사로 대표되듯 폭력의 피해자라는 정체성 외에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현남의 캐릭터는 거울이자 대꾸를 이룬다. 현남이 동은과 달리 폭력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아마 딸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지켜야 할 이가 있다는 것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니까. 그런 현남에 비해 아무도 없던 동은에겐 선택의 여지도 삶의 의미도 찾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래서 복수를 삶(생존)의 의미로 선택할 수 밖에는 없었을 텐데, 자신과 같지만 다른 현남과 연대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동은의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아니, 그 복수의 끝에 동은은 어떤 삶의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더 글로리' 2부가 몹시 기다려진다. 


©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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