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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an 11.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

몸으로 기억하던 바로 그 전율의 만화

© TOEI ANIMATION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2022)

몸으로 기억하던 바로 그 전율의 만화


중고등학교 시절 남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핫했던 아이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영화 '비트'에서 극 중 정우성이 입고 나온 로드맨 티셔츠와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신었던 나이키 에어조던 운동화일 거다. 너무나 갖고 싶었던 아이템이지만 모두가 갖고 싶었던 아이템이었기에 그 티셔츠를 입거나 그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순간 동네 못된 형들에게 뺏길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당시 SBS를 통해 국내에도 정식 소개되기 시작했던 NBA의 인기와 더불어 (그렇습니다. 저는 무려 마이클 조던의 선수시절을 라이브로 본 축복의 세대), '드래곤볼'과 함께 특히 국내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만화 '슬램덩크'의 어마어마한 인기로 인해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농구의 인기는 건국 이래 최고였고, 동네 농구장은 주말이면 학생들로 가득 차 한 게임이라도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였다. 


나도 바로 그 당시 농구에 진심이었던 학생 중 하나였다. 중학교 점심시간은 한시라도 빨리 밥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가 농구하기에 바빴고, 동네 근처에 농구 골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농구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농구선수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배운 농구도 아닐뿐더러, 눈으로 배운 지식이라고는 대부분 마이클 조던의 그것과 슬램덩크 만화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이었기에 기본기는 없고 겉멋만 잔뜩 든 농구였다. 레이업을 제대로 마스터하기도 전에 더블 클러치부터 시도했을 정도로. 그리고 내 실력 수준은 생각도 안 하고 어떤 스타일의 농구를 할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서태웅 같은 농구를 할 건지 아니면 윤대협 같은 농구를 할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윤대협을 롤모델로 삼았던 기억이 난다 (슬램덩크 캐릭터 중엔 윤대협을 가장 좋아해서 한동안 여러 게임 등 아이디가 '대협'이기도 했다).


© TOEI ANIMATION


그만큼 만화 '슬램덩크'는 흔히 말하는 '수백 번도 더 본' 작품이었다. 학생시절에도 수없이 반복해서 봤고 성인이 되어서도 바람이 불 때마다 전집을 샀다가 팔았다가 다시 샀다가를 반복했었다 (이번 영화 개봉을 맞아 책장을 뒤져봤는데 다행히(?) 현재는 전집을 다 소장하고 있는 시기다). 승패의 결과가 절대적 재미 요소 중 하나인 스포츠 만화의 특성상 반복해서 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는 볼 때마다 똑같은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어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번 빠져들게 만드는 극적인 연출 덕에 반복해서 봐도 전혀 긴장감이 덜해지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슬램덩크'의 매력은 확실히 그 연출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 자체로는 대부분의 스포츠 만화가 그렇듯 전형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물론 아주 큰 다른 점도 있지만), '극적'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연출은 매 순간이 땀을 쥐게 했고 손발이 오그라들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눈물을 먼저 만들어냈다.


2022년에 와서야 드디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선보이게 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동안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북산의 포인트가드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꺼내든다. 그동안 5명 중 가장 서사가 부족했던 인물이었기에 다소 의외일 수 있는 선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미 수없이 본 이야기를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관객들에게 선보이기에 적합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는 점이지만 송태섭이 도서지역인 오키나와 출신이라는 점은 중요한 지점으로 강조되고 있고, 형의 부제와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아픔을 극복해 가며 내면이 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왕공고와의 경기와 함께 플래시백으로 교차된다. 


© TOEI ANIMATION


잦은 플래시백 형태는 이 영화의 호불호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산왕과의 경기를 온전히 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가득 즐기고 싶은 기존 팬들에게는 다소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영화 한 편으로 보자면 서사의 측면에서 송태섭의 장점이기도 한 '감정'을 따라가는 더 자연스러운 여정이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슬램덩크에는 수많은 전율과 감동 포인트들(주로 대사들)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건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소극적으로 다루었는가 하는 점이다. 송태섭이 주인공으로 나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북산 멤버들의 이야기는 소극적으로 다뤄지거나 삭제되었고, 강백호의 이야기만 그나마 많이 노출된 편이다 (그나마도 팬들이라면 기다렸을 만한 몇몇 포인트가 건조하게 다뤄지고 있다).


원작에서 감동받았던 포인트를 이번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받길 원했던 팬 입장에서는 기다렸던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원작에서는 그다지 감동을 받지 못했던 포인트인데 새롭게 추가된 장면이 아님에도 거의 처음 그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된 순간들도 있었다. 사실 산왕과의 경기를 한 편의 극장판으로, 거기에다 새롭게 송태섭의 서사까지 추가한 형태로 압축하는 데에는 많은 덜어냄이 필요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원작에서 산왕전은 좋은 의미로 모든 것이 과잉되어 있는데, 무엇을 들어내고 절제할 것인가가 어쩌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 두 가지를 쉽게 걷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장면들이 클라이맥스이자 누군가에겐 인생 장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작품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결과는 더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몰랐던 송태섭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들도 더 궁금해졌다. 따지고 보면 북산고만 해도 강백호를 비롯해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의 개인적인 스토리도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걸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 느꼈다. 여기에 다른 학교 캐릭터들까지 추가한다면 말할 것도 없고.


© TOEI ANIMATION


하지만 원작 만화가 미완으로서 완성된 작품이었던 것처럼(마치 '헤어질 결심'과도 같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이것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세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성향으로 미뤄봐도 갑자기 다양한 이야기의 슬램덩크가 계속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을 북산고의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송태섭, 정대만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 아래 마지막 사진은 2010년 슬램덩크 속 실제 장소를 찾기 위해 방문했던, 오프닝 장면으로 유명한 에노시마의 바로 그 기찻길에서 한 컷 (비록 똑같은 옷을 맞춰 입지는 못했지만 나름 가방을 같은 포즈로 둘러멨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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