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Jan 23. 2024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2024년에 에반게리온을 본다는 것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The End of Evangelion, 1997)

2024년에 에반게리온을 본다는 것


아, 에반게리온. 많은 내 또래 오타쿠 아니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문화생활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이들이라면 빠져들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 나는 앞서 말한 또래 들에 비하면 조금 늦게 접한 경우인데, 10대 후반이 아닌 20대 초반에 알게 된 에반게리온에 무서운 속도로 빠져들었고, 지금과는 달리 관련 자료나 정보 등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탓에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작품을 이해하고 또 해석하려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던 과거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에반게리온'을 대하는 것에 있어 분석파는 아니다. '에반게리온' 만큼 다양하고 깊이 있고 무엇보다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은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수많은 오타쿠들을 몰입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에바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나와 타인의 관계(정확하게는 경계), 그리고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빠져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정통으로 맞은 작품이 바로 에반게리온이었다. 그러니 빠져들 수밖에.


20대 초반 웹매거진의 기자로 활동할 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에반게리온'을 시리즈로 엮어 설명부터 감상까지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이런저런 에바 활동들이 알려진 탓인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국내 정식 개봉할 땐 제작사에서 초대받아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로 선정되어 활동하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내 인생에서 가장 덕력이 폭발하던 시절이었다. 신극장판이 개봉할 때마다 두근거림은 이어졌고 모든 에반게리온이 그러했듯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Evangelion: 3.0+1.0> 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무언가 내 인생의 커다란 한 페이지와 안녕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좋든 싫든 에반게리온은 내게 있어 떨칠 수 없는 일부분이었으니까.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처음 본 건 아마 VCD 포맷이었을 거다. 아마도 정식 제품이 아니었을, 용산 전자상가에서 구입한 VCD로 감상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조악한 화질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그 충격은 그 뒤에도 한참이나 회자되었다. TVA에 이어지는 25, 26화를 담은 이 작품은 당시 논란이 많았던 TVA의 엔딩을 마무리하는 진짜 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이 만큼 확실하고 노골적인 마무리가 또 없더라.


1997년 작인 영화를 세기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2024년에 다시 본다는 건 여러모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첫 정식 개봉인 탓에 극장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수 없이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던 작품인데도, 한 편으론 처음 보는 것처럼 관람할 수 있었고 어른이 된 탓인지 그때는 와닿지 않았던 순간들에 감정이 동요되기도 했다.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이후 나왔던 수많은 분석들을 알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안노 히데아키의 이 확실한 마무리가 더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조금의 모호함도 없이.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후반부는 아주 직접적으로 이 작품을 소비하는 이른바 오타쿠들에 대한 메시지나 다름이 없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오타쿠들아, 현실 세계로 나와!' 같은 메시지인데,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들이 당시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많이 등장했다는 걸 이번 관람으로 알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에 심각하게 몰입되어 현실 감각마저 잃어버린 오타쿠들을 설득하기 위해 실사 장면 같은 아주 극단적인 형식까지 가져온다. 더불어 아예 극장에 앉아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비추기도 하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Evangelion: 3.0+1.0> 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EOE에서도 여러 장면에서 '에반게리온'이 일종의 연극/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새삼스럽지만 <에반게리온>은 오타쿠들의 몰입으로 인해 성립되는 작품인 동시에 그 세계를 만든 창작자로서의 책임감이 더해진, 그래서 그 자체로 미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텍스트가 되어 버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만 쓰면 혹자는 오타쿠들에 대해 안노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만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이것만 가지고 얘기해도 한참이 걸릴 듯). 결론적으로 나 역시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분분한 해석들처럼 어지러웠고 충격적이었지만(하지만 감동받고), 여러 해석과 감독의 인터뷰 등을 알게 된 지금 다시 본 EOE는 확실히 일종의 책임감으로 자신의 팬이자 동료이자 적이기도 한 오타쿠들에게 스스로에게만 갇혀있지 말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메시지가 제대로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안노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 미라지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여전히 모르는 것들도 있고 더 분명해진 것들도 있는 2024년에 <에반게리온>을 다시 본다는 건 참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인 체험이었다. 다시 덕력이 넘쳐나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이상한 기운도 느껴졌다. 극장을 나오면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시 <에반게리온>을 꺼내 보고 싶다는 거였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들. 추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이번 EOE관람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에반게리온과는 영원히 안녕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좋든 싫든 간에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계+인 2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