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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Feb 27. 2024

파묘

경로를 이탈할지라도 끝까지 간다


© ㈜쇼박스


파묘 (Exhuma, 2024)

경로를 이탈할지라도 끝까지 간다


'검은 사제들 (2015)' '사바하 (2019)' 등 한국 영화계에서는 흔치 않은 오컬트에 진심인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 평소 그의 전작들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이번 신작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선공개된 예고편과 스틸 등은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 같은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도 큰 흥미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예고편 속 장면이 기억에 쉽게 각인될 만큼 참 잘 만든 티저였다). 전작들 가운데 '사바하'를 가장 좋아하는 입장에서 '파묘'는 기대와 동시에 살짝 걱정이 되는 지점도 있는 영화였다. 캐스팅과 예고편만 보아도 전작에 비해 더 규모나 기대치가 높아진 작품이라 자칫 이야기와 연출에 있어 대중성을 위한 타협 아닌 타협으로 귀결되기 쉬운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라 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지만 가급적 영화 감상 후 보시길 추천합니다)


© ㈜쇼박스


'파묘'는 관객의 호불호 지점이 분명한 영화다. 흥미로운 건 장재현 감독이 이러한 우려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여러 제작진들의 반대에도 오히려 끝까지 본래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나 설정을 관객이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 지점이 반드시 불호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구조는 여러 모로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리즈 에피소드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미 익숙한 인물들이 평소처럼 팀(유사 가족)을 꾸려 사건을 마주하는 방식이나, 해결 이후의 모습에서도 종결의 느낌이 아니라 연속성의 느낌을 준다. 이런 구조와 맞물려 첩장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다른 결의 전개로 나아간다. 장르적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전혀 다른 장르로의 변주로 받아들일 정도로, 이 이후의 영화는 내용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다른 경로를 택한다. '파묘'는 여러 모로 전작들에 비해 내레이션 등 친절한 설명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을 삽입한 것 역시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관객들에게 '이제부터 좀 다르게 진행될 거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친절히 경고하는 것처럼.


© ㈜쇼박스


그런 경고가 있기는 했지만 민족적인 배경이 되는 이야기로(아주 직접적인 인물의 대사로) 영화가 방향을 틀 땐 솔직히 '엇?' 하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특히 이 영화가 장르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성격이 강한 오컬트 장르라는 점에서 다른 메시지 적인 요소들은 굳이 건들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는 관객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냐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영화가 선택한 대한민국 국토와 일본의 침략 그리고 쇠말뚝에 관한 이야기가 선택의 영역이었는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파묘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파내야만 했던 이야기인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솔직히 이런 전개 방향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이 오컬트 세계관 속 네 명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들이 등장하는 2시 간 조금 넘는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시즌제 드라마 속에서 각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쉽게 또 여러 가지 떠오를(보고 싶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전사가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편의 영화 만으로 얼마나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는지 감탄하게 된다. 너무 두근두근 기대되지 않나. 또 누군가 묏자리를 잘못 쓴 이들의 요청을 수락해, 파묘를 하고 염을 하고 굿을 하며 어둠의 존재와 싸우는 네 사람의 모습이.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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