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시네마로 펼쳐낸 메시아 서사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듄 : 파트 2 (Dune: Part Two, 2024)'는 삼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속편이다.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속편의 경우 장점과 단점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분명하다. 일단 속편의 장점으로는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비중이 높아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완전히 독립되기 어려운 1편과 거대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종결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3편에 비해 운신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로 인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또 갈등 구조를 디테일하게 전개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반대로 단점이 도드라지는 경우엔 1편과 3편 사이에서 다리를 잇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드니 빌뇌브의 두 번째 '듄'은 삼부작에서 파트 2가 갖는 장점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1편에 비해 서사는 더 단단하고 속도감을 갖게 되었고,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폴의 고뇌는 더욱 깊어졌으며 무엇보다 삼부작의 속편임에도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성립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드니 빌뇌브는 전작들에서도 잘 보여주었듯 이미지로 압도하는 것을 즐기는 감독이다. 그것을 시네마적이다라고 부르든, 과잉이라고 부르든 간에 말이다. 그런 감독의 의도가 가장 도드라지게 표현된 작품이 바로 '듄'이다. '듄'이라는 세계관 속의 인물과 배경 들은 드니 빌뇌브가 자신의 역량을 펼쳐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조건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런 놀이터에 또 한 명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함께 하고 있으니 '듄' 시리즈의 압도적 스케일은 아마도 현재 우리가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궁극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 그 다른 한 사람은 물론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다). 과잉됨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최대치를 자신 있게 표현해 내겠다는 감독과 스텝들의 야심은 이번 파트 2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이 서사와 더 잘 맞아떨어지면서 확실히 전작보다 진일보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비슷한 설정의 소설이나 영화 등을 한 번이라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전체적인 구조와 캐릭터, 이야기를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듄'의 이야기는 유사한 레퍼런스들의 집약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듄'을 이른바 뻔한 이야기라고 평가 절하하기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 역시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단순히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비전 아래에 하나로 엮고 발전시키는 것에 도달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새로움을 갖게 되었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강박은 지금 시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논의가 아닐까 싶다). 티모시가 연기한 폴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미 지나간 여러 작품 속 인물들의 여정이 엿보이지만, 그것들이 각각 해체되고 재조립되어 다시 나아가는 폴의 이야기는 또 다른 레퍼런스로 자리 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아마 이런 점은 삼부작의 마지막인 파트 3에서 더 분명히 결정될 것이다.
'듄 : 파트 2'의 핵심 이야기는 폴이 무앗딥으로 또 리산 알 가입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전편에서부터 언급되었듯이 폴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또 의심하는데, 이런 의심의 갈등이 고조되고 결과로써 드러나는 것이 이번 작품의 핵심이다. 폴의 메시아 서사를 더 선명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오스틴 버틀러가 연기한 페이드 로타인데, 그가 흥미로운 건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폴의 또 다른 비전 혹은 자아로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후반부 폴과 로타의 결투와 이후의 상황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폴이 악함 그 자체인 로타를 넘어섰다기보다 마치 흡수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듄 : 파트 2'가 비슷한 메시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젠데이아가 연기한 챠니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폴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가까운 관계든 적이든 간에)은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로 폴을 각기 다른 의도로 접근하고 있는데(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가 각각의 캐릭터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전편에 비해 챠니가 폴을 대하는 입장의 변화가 이번 작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파트 2를 보았을 때 파트 3에서는 챠니의 비중이 더 커지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예상되는데, 어쩌면 이 부분이 '듄' 트릴로지를 또 다른 에픽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판가름할 지점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대마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삼부작이 존재하는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등) 확실히 현시대를 대표하는 삼부작은 '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시리즈는 영화와 역사, 사회, 종교 등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흡수한 뒤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압도적인 시네마로 인해 저물어 가는 극장의 시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익숙하지만 복합적인 텍스트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재생산해 낸다는 점에서 드니 빌뇌브의 '듄'은 더 의미가 있는(있게 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