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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수 MIT간다 Jun 25. 2024

서른, 난생처음 백수되다

백수일기 #1

못해 먹겠습니다.


만 나이를 핑계로 바득바득 20대라고 주장하던 2023년이 가고 나는 올해 진정한 서른 살이 됐다. 아직 정신연령은 24살 그대로인데 정신 차려보니 현대사회에 쩌든 7년 차 직장인이다.


2022년이었던가, 막 대리를 달았을 때쯤 새삼 '이렇게 평생 살면 행복할까?'싶었다. 내 10년 뒤 모습일까 싶은 선배의 인생도 딱히 재밌어 보이진 않는다. 그마저도 회사에서 잘 풀렸을 때 얘기다. 한국 평균 퇴직 연령 50세. 회사에서 임원들 몇 명 제외하면 40대 중반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나는 회사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온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일까? 명함 속에 매몰되어 있다 보면 조직에서 내 효용감과 진짜 내 능력을 혼동한다. 대단한 프로젝트를 큰 돈을 들여 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내 돈도, 내 온전한 능력도 아니다.


그 쯤 막연하게 여태 공들여 닦은 뻔한 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한 공부, 뻔한 취업, 뻔한 승진 그렇게 해온 건 아닐까? 그러면 그다음은?


처음으로 일탈을 생각한 지 2년 만이던가, 24년 1월 미국에 석사 원서를 냈다. 그리고 누가 붙여준 것도 아닌데 덜컥 사직서를 내버렸다.





백수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첫 째,

3월에나 결과를 알 수 있을 텐데 원서를 내자마자 지루한 일상을 살아낼 의지가 맥없이 빠졌다. 회사 다니면서 시험 보랴, 에세이 쓰랴 아등바등하다 보니 얼마 없는 에너지를 몽땅 써버린 기분이었다. 수능 본 고삼이 학교 가기 싫은 느낌? (대충 출근하기 싫다는 말)


둘째,

처음 미국 간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석사 다 떨어져도 무작정 미국 가서 살 꺼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타협하고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기왕 칼자루를 뽑은 김에 때려치우기로 했다. 배수의 진을 쳐야지.


셋째,

더 늦기 전에 진짜로 난 뭘 할 줄 알고 뭘 하고 살고 싶은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보통 그쯤 돼서 해야 하는 일 말고, 현실적인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고르는 일 말고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백지에서 고민해보고 싶었다.




생각을 글로 옮기면 명쾌해진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스치던 고민도 뱉어지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돌다 보면 불완전하게 잔존하다 사라진다.

석사 에세이를 쓰면서 다 떨어져도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꿈과 목표는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너무 오랜만에 하는 생산적인 경험이었다.


생각을 글로 옮기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나열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분명해진다. 백수 일기를 쓰기로 한 이유도 나름의 결론을 찾기 위해서이다.

‘서른 살 백수’라는 타이틀도 꽤나 맘에 들고 해서 백수일기를 기록하면서 백수 된 김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력서를 쓰다 보면 경력 한 줄이 그 시간 동안 내가 꽤나 열심히 살았다고 대변해 준다. 그렇다면 백수 시절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기억되기 딱 좋겠더라. 이 기록으로 내가 꽤나 ‘생산적인 백수’였음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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