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호텔 앤 레스토랑> 기고문
뉴욕 중의 뉴욕이자 뉴욕의 심장인 맨해튼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곳이다. 다양한 개성과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멜팅팟이자 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19세기와 21세기를 잇는 듯 각 시대를 대변하는 모습의 빌딩을 품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맨해튼은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와 멋진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으로 유명하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를 걷다 보면 시대별 모습을 간직한 멋진 건물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그 무게감에 억눌리며 갑갑함이 밀려온다. 그래서인지 맨해튼의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은 길거리보다도 마천루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다.
맨해튼의 건축물과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맨해튼에만 5곳이다. 그리고 각 전망대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에 맞춘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브랜드 토크에서는 필자가 뉴욕 맨해튼의 5대 전망대를 직접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전망대가 어떻게 경쟁 속에서 차별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닌 브랜드는 경쟁 속에서 빛을 발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브랜드는 수많은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눈에 띄고,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런 브랜드는 기억에 각인된다. 기억에 각인된다는 것을 마케팅 용어로는 ‘포지셔닝’이라 한다. 소비자의 머릿속에 긍정적으로 포지셔닝된 브랜드는 여러 조건이 비슷한 대안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타 브랜드를 제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유명 마케팅 전문가이자 작가였던 잭 트라우트(Jack Trout)는 브랜드가 고객의 기억에 각인되는 것을 전쟁에 비유하며 포지셔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포지셔닝을 위한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차별화 전략이 필수임을 제시했다.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독창성과 혁신, 지속가능성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차별화의 필수 요소다. 그 외에도 브랜드가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의 특성과 혜택, 상황, 타깃 고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타 브랜드에서 갖고 있지 않은 우리만의 특성과 혜택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우리 브랜드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며,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고객의 니즈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차별화의 시작점이다. 이러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는 타깃 고객에게 꼭 필요한 브랜드, 꼭 경험하고 싶은 브랜드로 각인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쪽의 허드슨 강과 동쪽의 이스트 강의 사이에 위치한 섬 맨해튼은 59㎢의 길쭉한 섬이다. 이는 상중하로 크게 업타운(Uptown), 미드타운(Midtown), 다운타운(Downtown) 혹은 로워 맨해튼(Lower Manhattan)으로 나뉜다. 맨해튼의 5개 중 4개의 전망대는 미드타운에 몰려 있으며, 원 월드 전망대(One World Observatory)만이 다운타운에 위치한다. 또한 맨해튼은 5번가(5th Ave.)를 기준으로 좌우로 허드슨 강이 있는 서쪽을 웨스트사이드, 이스트 강이 있는 동쪽을 이스트사이드로 구분한다. 미드타운의 4개의 전망대 중 디 엣지(The Edge)는 서쪽에, 나머지 3개는 5번가 근처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서쪽의 디 엣지 전망대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도보로 20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써밋 원 밴더빌트(SUMMIT One Vanderbilt) 전망대까지 도보 12분, 써밋 원 밴더빌트에서 록펠러 센터의 탑 오브 더 락(Top of the Rock)까지도 도보 15분 정도 소요되는 인접한 거리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맨해튼의 5개의 전망대는 어떻게 차별화를 하고 있을까?
Top of the Rock
록펠러 센터의 탑 오브 더 락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과 맨해튼의 허파인 센트럴 파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 곳이다. 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탑 오브 더 락의 경쟁 우위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회색 빌딩 숲 사이에 초록빛으로 물든 센트럴 파크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은 사람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 사랑받는 풍경이다. 이 풍경은 탑 오브 더 락과 센트럴 파크 사이에 새로운 전망대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차별화된 셀링 포인트로 충분하다. 또한 이곳을 특별하게 하는 스토리 중 하나는 그 유명한 <마천루 꼭대기의 점심 식사:Lunch atop a Skycraper>의 작품 배경이 됐던 곳이라는 점이다(그림 2).
EMPIRE STATE BUILDING
뉴욕주는 여러 개의 별명이 있다. 그중 다양한 자원과 부로 인해 생긴 별명이 ‘The Empire State’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이 별명을 따라 명명한 건물로 1931년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마천루의 상징으로 <킹콩>을 비롯해 <엘프>, <슈퍼맨 2>,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인디펜던스 데이> 등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등장한다.
뉴욕을 대표하는 마천루이자 뻥 뚫린 뷰를 자랑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록펠러 센터에 탑 오브 더 락이 생기자 이와 경쟁해야 했다. 유사한 속성을 가진 경쟁자의 등장으로 차별 우위 요소가 사라졌다. 또한, 뉴욕의 상징인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은 맨해튼 뷰를 봐야 한다는 약점으로 이는 탑 오브 더 락에만 좋은 일을 해주는 격이었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빌딩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각종 체험 전시관을 마련했다. 그렇게 2019년 새로운 모습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가 탄생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영화 킹콩의 세트장처럼 꾸며 놓은 곳이다(그림 3). 실제 킹콩이 빌딩에 매달린 채 벽을 뚫고 내민 손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킹콩의 얼굴 표정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영상은 킹콩의 움직임과 맨해튼 상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재미있는 추억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으로 활용된다. 다양한 체험용 공간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 방문객에게 사랑받는 곳이 됐다. 아이들은 앞다퉈 킹콩의 손 모형에 올라타기도 하고 사진을 남기는 등 즐거운 추억을 쌓아간다.
ONE WORLD OBSERVATORY
2001년 9·11 테러 이후 2015년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있던 자리에 탄생한 랜드마크인 원 월드 전망대는 5곳 중 유일하게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다. 미드타운의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근접한 빌딩 숲 전경은 볼 수 없다는 점과 실내 전망대로 유리를 통해서만 감상해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로워 맨해튼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과 자유의 여신상, 퀸즈, 브루클린, 뉴저지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이곳만의 차별점도 분명하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영상은 1600년대 인디언으로부터 맨해튼의 땅을 산 네덜란드인들의 정착기부터 현재 뉴욕시티의 변천사를 담은 타임랩스 영상,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하이테크를 활용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THE EDGE
2020년에 선보인 디 엣지 역시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풍성하게 해주는 랜드마크다. 디 엣지는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의 허드슨 야드(Hudson Yards)에 위치해 있어 서쪽 하늘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풍경과 동쪽의 뉴저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디 엣지의 야외 전망대는 타 전망대에 비해 넓고 독특한 형태다(그림 4).
모서리를 의미하는 ‘Edge’의 네이밍에 따라 뾰족한 삼각형 모티프가 건물 곳곳에 드러난다. 건물의 상부 디자인, 야외 데크의 형태, 데크 바닥의 투명 유리 등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뷰 및 공중 부양한 듯한 사진 촬영이 가능한 유리 포토존, 피크(Peak) 레스토랑과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등의 차별점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는 다른 전망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넓은 야외 전망대다. 그러나 이는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021년 하반기부터는 타 전망대와의 차별화 및 브랜드 입지를 굳히기 위해 The Edge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로 스포츠에 관심 있는 스릴 및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들이다. 이는 빌딩 정상인 The Apex까지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 올라가는 건물 등반(City Climb), 실내 전망대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탁구 치기(Sky-High Tennis), 야외 전망대에서 요가 수업(Sky-High Yoga) 등이다. 아침 요가 수업은 미국의 유명 고급 피트니스 센터인 Equinox와 The Edge의 합작으로 탄생한 하늘 위에서 즐기는 것으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전망대의 강점과 차별점을 잘 활용해 관광객에게 색다른 서비스 제공은 물론, 전망대 유휴시간에 연관된 프로그램으로 부가적인 수입을 생성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SUMMIT ONE VANDERBILT
가장 최근에 오픈한 써밋 원 밴더빌트는 전망대 경험을 또 다른 경지로 끌어올린 곳이다. 2021년 하반기에 오픈한 써밋 원 밴더빌트는 오픈 전부터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소문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바로 앞에 위치한 이 전망대는 미드타운의 탑 오브 더 락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중간 지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망 자체로는 기존의 선두주자들과 큰 차별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써밋 전망대는 기존의 전망대와 차별화하기 위해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Air, Levitation, Ascent, Aprés의 키워드로 구분해 경험의 프로세스를 표현한다. Air(공기)는 실내 전망대이자 거울의 방과 구름방에서 경험하는 초월 감, 은빛 풍선의 방에서 경험하는 즐거움을, Levitation(공중부양)은 투명 직육면체의 공간에서 경험하는 공중부양의 느낌을, Ascent(상승)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93층까지 올라가는 경험을, Aprés(~이후)에서는 관람을 마치고 맨해튼 풍경을 벗 삼아 칵테일 한잔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써밋 원 밴더빌트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세련된 놀이터라고 표현하고 싶다(그림 5). 이곳에서의 맨해튼 도시 풍경은 그저 거들뿐이다. 풍경 감상을 하는 것보다 색다른 공간에서 즐기는 경험의 몰입도가 높기 때문이다.
어느 브랜드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시장의 상황과 고객의 니즈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분석이 필요하다. 이는 시장에 진입할 때는 물론이고, 이미 자리 잡은 브랜드에도 해당된다. 각종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느리면, 브랜드 입지를 다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던 시절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전망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차별화 요소였으나, 유사한 속성의 경쟁자가 시장에 들어온 후 그에 적합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이에 2019년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빌딩의 역사와 스토리를 살려 가족 친화적인 콘셉트의 체험형 전시관으로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디 엣지와 써밋 원 밴더빌트는 이미 경쟁이 있는 시장에 진입하며 자신만의 강력한 차별화 요소를 바탕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꾀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도 각 브랜드가 제공하는 혜택과 특성이 겹치지 않는다면, 시장의 파이 나눠먹기를 하는 대신 서로 윈-윈하며 공존할 수 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전망대들이 새로운 혜택과 서비스로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에 타 경쟁자에 비해 연식이 있는 탑 오브 락의 행보가 기대된다. 센트럴 파크의 정면 뷰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전망대라는 강점만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유지할까? 아니면 기존의 강점에 추가적인 강점을 개발해 독보적인 브랜드로 거듭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