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브랜드 만들어 가기
4월의 어느 날, 모임에서 발제를 하고 그 내용을 모임의 브런치 계정에 게시해야 했습니다. 그 글을 게시하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써놓은 글이 별로 많지는 않았지만 지원을 했고, 예상외로 매우 빨리.. 하루 만에 합격 메일을 받고 정말 신났습니다 :) 브런치에 올릴 첫 글로 어떤 내용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저에 대한 소개와 함께 브랜딩에 눈을 뜨게 된 계기에 대한 내용을 준비했어요.
저는 현재 브랜드 전략가로 소규모 회사들의 브랜드 컨설팅을 하며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브랜드/브랜딩 관련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브랜딩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고는 대학생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제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호텔과 디자인
저는 디자인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디자인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했고 수채화나 데생은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구성 (갖가지 도형을 배치하고 포스터 칼라로 색상 매칭을 하면서 색칠하는 작업)은 틈틈이 취미로 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기회가 생겼고, 가족과 호텔과 카지노의 천국인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면서 호텔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호텔의 로비와 로비 화장실만 봐도 이 호텔의 디자인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미성년자이므로 카지노에 들어가서 도박을 할 수도 없었고.. 저의 관심사는 다양한 호텔의 디자인을 보면서 콘셉트를 연결 지어 생각해보는 것이었습니다. 호텔을 설계할 때, 통일된 콘셉트로 디자인을 했을 것이고, 모든 호텔에 다 투숙해볼 수는 없으니.. 호텔 로비와 로비 화장실만 봐도 호텔의 디자인 콘셉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호텔의 콘셉트에 따라 로비의 디자인과 로비 화장실의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확인하고 좋아하면서 다른 호텔들도 더 확인하고 싶어서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진로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주었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급부상했던 호텔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으니까요^^
호텔은 끊임없이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 산업에 속하기도 하지만, 한정된 자원 (객실)을 효율적이며 효과적으로 임대하며 최대한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부동산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호텔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여 기억에 남을 경험과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예술산업의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텔 경영자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학적 지식, 고객을 섬기는 서비스 마인드, 그리고 감성적인 영역을 창조하는 예술적 소양도 겸비해야 해요.
대학을 다니면서 학과 특성상 흥미로운 과목들이 많아서 정말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방학 때는 틈틈이 웹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인 감각도 키웠고 특 1급 호텔에서 실습도 하면서 호텔업이 저의 적성에 맞는지 확인해봤습니다. 인테리어 학원을 다니면서 선생님들로부터 decoration, mix&match에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자신감이 생겨 인테리어 석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그런데 관련 분야의 분과 상담을 해보니, 학부 때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석사를 호텔경영학을 한 경우는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너무나 험난한 길이라는 조언을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한 조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졸업 후 호텔에 입사해서 3년간 프런트 데스크에 근무하며 고객을 이해하는 마음과 통찰력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었고, 이후 경영학적 지식을 심도 있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경영학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경영학 석사 그리고 호텔에서의 새로운 경험
꽤 어린 나이인 20대 중반에 경영학 석사과정에 진학을 했지만, 제 실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어요. 일단 제가 3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저의 보고서 작성 실력이나 프레젠테이션 실력은 대학생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함께 수학하는 동기들은 연배도 저보다 높았고, 제 또래들도 사무직 출신들이 많아서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누가 될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 저만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PPT장표를 예쁘게, 보기 좋게 꾸미는 것에 집중을 해보자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팀플을 할 때, 제가 장표 담당을 하겠다고 하면서 나름 팀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석사 졸업 즈음에 호텔업계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타 산업으로 진로를 변경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마침 제가 관심 갖고 있던 호텔에서 '식음전략기획팀'이라는 팀을 신설한다는 공고를 봤고 바로 지원을 해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회사 사람들로부터 '오너의 딸 (오너와는 1도 관계없었지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은 기회로 여러 부서를 두루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경영학 석사를 하고 호텔에 입사하는 직원은 그 당시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차별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브랜드 전략, 조직문화, 그리고 디자인까지.. 토털 브랜딩
식음전략기획팀: 호텔의 레스토랑 브랜드 관리 및 차별화 전략 구축
경영진단팀: 감사업무 & 사내 컨설턴트 역할 / 회사 역사책 편찬 (각 호텔의 차별점에 대한 고찰)
인사팀: 인사 기획 및 조직문화 구축 및 활성화
경영기획팀: 호텔의 디자인 차별화 전략 구축
디자인기획팀: 호텔의 디자인 차별화 전략 실행
식음전략팀에서는 제가 담당하던 두 개 호텔의 20개의 레스토랑의 브랜드를 관리하면서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을 구축하는 업무에 주력했습니다. 이때 막연하게 차별화되는 브랜딩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 것 같아요. 경영진단팀에서는 내부 컨설턴트로서의 역할과 함께 사사(회사의 역사책)를 제작하며 제가 몸담고 있는 두 개의 호텔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며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한 역사책이 아닌 회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역사, 문화, 그리고 스토리가 함께 들어있는 책을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이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니, 저에게 부서를 선택해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여 저는 늘 관심이 많던 인사팀을 선택했고, 조직문화 구축을 담당했습니다. 이에 사사를 제작할 때 수립한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이후 대표이사의 지시로 경영기획팀으로 이동하여 두 개의 호텔을 시각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디자인 차별화 전략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디자인 차별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디자인기획팀이 신설되었고, 인테리어 디자인, 집기류, 유니폼, 예술품 등의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디자인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이에 브랜드 전략부터 조직문화, 그리고 디자인까지 담당하는 토털 브랜딩을 몸소 경험했고, 브랜딩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볼까..?
사실 저는 대학생 때 막연하게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전공한 호텔관광경영학이나 경영학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실용적으로 활용되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실용학문이기 때문에... 그래서 언젠가 박사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고 그 일을 해내는 재미를 느끼며 성취감을 한창 만끽하니 굳이 공부를 더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이 회사를 떠나면 어떤 타이틀로 불려질까?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지 않으면 NOBODY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마지막 직책으로 불려지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서 되도록이면 더 높은 직책으로 퇴사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하겠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
내가 이 회사를 떠나면 어떤 타이틀로 불려질까?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불려질 나만의 브랜드가 필요해...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저의 다양한 경력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을 때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었어요. 보통 마케터를 채용할 때, 마케팅 3년, 5년, 7년 경력 이런 요건이 붙기 마련인데.. 저는 다양한 부서에서 1년~2년 경력밖에 없으니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워서 딱히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이 많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 경력은 강의를 하거나 컨설팅, 특히 브랜딩 관련, 을 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야겠다는 고민을 하며 제 업무와 연관된 브랜드와 브랜딩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회사를 다니면서 영국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긴박하게 준비했는데도 운이 좋게 합격을 했어요. 이에 2년가량은 회사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가 3년 차에 박사 논문을 집중적으로 준비해야 해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논문 읽고 책 읽으며 나름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면서도 앞으로 뭐해 먹고살지에 대한 두려움도 살짝 있었는데요, 좋은 기회에 모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소소하게 브랜딩 전략이나 자문에 대한 요청도 들어오더군요.
Branding: Connecting the Dots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지나온 역사와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를 바탕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의사결정의 결과물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제품, 회사, 국가, 개인에게 모두 해당됩니다. 크고 작은 의사결정은 전략 (가치관, 비전, 미션, 큰 방향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전략의 부재 시에서는 임시방편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일관성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브랜드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한번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기에 대한 대처도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혜롭게 해야 하고, 트렌드나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여 뒤처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도 해줘야 하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커리어를 쌓아갈 때도 때때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해보며 나의 브랜드 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회사에서 한 부서에서 막내로 시작해서 부서장을 거쳐 임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회사에서 다양한 부서를 이동하며 업무를 경험하고 임원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의 직무로 다양한 회사를 옮겨 다니며 역량을 높이기도 하고요. 개인의 커리어를 쌓는 데 정답은 없습니다. 다 각자의 성격, 성향, 가치관, 비전, 상황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하며 만들어가는 거라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일관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경험으로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관심 가졌던 디자인, 청소년기에 눈을 뜨게 된 호텔, 성인이 되어 배우게 된 마케팅,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심을 갖게 된 브랜딩까지.. 물론 제가 늘 옳은 선택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후회되는 선택을 하기도 했고, 또 저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힘든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가지치기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생'의 삶을 살며 늘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며 경험하고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포부는 우리나라의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브랜딩,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딩을 하는 업무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며 그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인만의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계신가요?
제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할 때, 다루는 내용인데 이렇게 글로 작성하니 뭔가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네요^^;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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