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말로 실어나르는 용기도 잃지 않기를
침묵 뒤에 가려진 마음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그는 마지막 인사로
아무말도 전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가족의 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참고 지냈던, 꺼내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지 못했던
아픔, 분노, 외로움, 서러움 여러가지 감정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그의 안에 꽁꽁 묶여있었을 것이다.
그 묶여진 감정들 속 그 어떤 것도 특정한 형태의
‘말’로서 발화될 수 없었겠지.
이미 내 인생에서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죽음 앞에 마지막 책임으로서 장례를 치르고, 결국은 마지막으로 그의 육체를 마주할 때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허무함이었을까.
이렇게 결국은 세상을 떠날 것을
떠나면 이렇게 다 끝나는 일인 것을 그간에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살았나하는.
최소한의 인사로서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는 침묵이어떤 말보다도 아프고 무거웠다.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헤아려지는 침묵이 있다.
어떤 말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때의 나에게 침묵은 고통이었으나,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침묵은 그 자신의 고통을 어찌하지 못함이었다. 혹은 부단한 생각의 시간 속에 있음을 뜻했으리라.
당장 누군가에게 내가 원하는 시점에
어떤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가 힘들 정도로 답답해하거나 상대에게도 과도히 어떠한 말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침묵 그 뒤에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그만의 아픔이나 고됨이 있으리라.
그러나, 가끔은 침묵으로 도피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말로 전달할 수 있는 성숙함이 가치있다고 믿는다.
특히 상대의 아픔을 마주했을 때나, 관계의 중요한 시점 안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서툴더라도 말로서 풀어나갈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다른 이의 침묵에 조급해하지 않고, 내 생각도 차분히 적절한 시점에 말로서 내놓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점을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