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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코끼리 Sep 01. 2020

일곱 번의 이직과 선물

커리어 01.

나는 직장생활 16년 간 총 7번의 이직을 했다.


이직 소식을 전할 때, 직장동료들은 노하우를 물었고, 가족과 친구들은 참고 견뎌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일부 상사들은 나를 조직의 배신자로 간주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떠나 보냈.


겉으로는 당당했으나, 사실 나 역시도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 속에 몸 부림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남들처럼 10년, 20년 장기 근속하지 못할까?" "나는 이상주의로 점철된 현실 부적응자일까?"
"혹시 부족한 인내심이 나를 인생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까?"


하지만, 근길 만원 전철 속에서 채용사이트를 훔쳐보는 샐러리맨들을 바라보며, 이는 나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누구는 더 도전적인 환경에서 성취를 이루고 싶고, 어떤 이는 지금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다.


결국 현재보다 나은 삶을 꿈 꾸는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고, 이를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충성심이 인재 발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던 한국의 직장 문화에서 나는 분명 아웃사이더이다. 


공채는 '성골'이고 경력직은 '진골'이라는 인식은 오랜기간 공식과도 같았다. 


하지만, 남이 볼 때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경솔한 나의 선택은 뜻하지 않은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첫째, 자유로움이다. 


대부분 한 곳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과장 이상 타이틀을 단 직장인들은 이직을 실행하기 어렵다. 밀려드는 업무와 사내정치에 보조를 맞추다 보면 본인 역량 개발은 뒷 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상사들은 야간 MBA 다니는 후임보다, 회식 열심히 참여하고 싱글 골퍼인 직원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나는 비교적 이런 부분에서는 자유롭다. 회사는 필요하여 나의 업무 역량과 경험을 산 것이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나의 책임감은 상당부분 해소된다.


동료/상사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개인시간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은 의무라기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옵션에 가깝다.


둘째,  넓은 경험과 시야이다.


나의 두 번째 직장은 월급쟁이로 출발한 오너가 재계 10위권의 대기업 집단을 일군 스토리로 잘 알려진 회사이다.


지금은 공중분해되어 이름만 남다시피 됐지만, 성장 가도를 달리던 당시 나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은 밤낮을 잊고 일에 몰두했다.


지금도 그러한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나도 월급쟁이지만 열심히 하면 오너가  있다"막연한 기대가 작용했던 것 같다.


그 곳에 재직하는 5년 간 (나의 최장 근속 회사이다) 나는 남들이 10~15에 걸쳐 경험하는 업무를 압축하여 습득하였다.


기본적인 경영관리 프로세스에서부터 

M&A처럼 법/재무/회계 등 복합지식이 필요한 분야까지, 맨 땅에 헤딩하듯 배워나갔던 그 경험이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쳐 다양한 업종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업 트렌드와 비즈니스 성공요인을 알게 되었고, 조직운영있어서도 효율과 효율을 구분하는 판단력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A와 B를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은 선입견에 함몰되기 쉽다.




물론 이직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이직의 스트레스는 이혼의 그것과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새로운 직장에 갈 때마다 나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고, 인간관계를 다시 맺어야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의이던 타의이던 경력직의 삶을 택한 이상 철저히 프로가 되어야 한다. 집에 있을 때면 없고 게으른 중년이지만 일터에 나가면 안타를 때려 내는 3할 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수요 (필요성)'와 '공급 (희소성)'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우리 직장인에게도 어김 없이 적용된다.


최근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직원 상당 수는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경영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단순 업무는 컴퓨터가 처리하고,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생산시설의 자동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역시 AI가 내리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향후 직장인 (특히 일반 사무직)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희소성을 높이는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경험과 지식, 스킬이 필요하며, 이는 한 직장/한 직무에만 종사해서얻기 어려운 자산이다.


이제 직장인들도 회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해야 한다. 만약 현재 회사가 본인의 전문성 개발과 경험 확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박차일어나 새로운 일터를 찾는 용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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