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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Feb 25. 2021

괜찮지 않아도 돼

외과 수술실 간호사의 갑상선암 치유기 episode 9

생각이 많은 나날들을 보내며 틈틈이 글을 써서 서랍 속에 차곡차곡 저장했지만 어떤 글도 나는 완성해낼 수 없었다.

좀 더 완벽하게 마무리를 잘 짓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내 생각, 감정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서 정리하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인듯하다.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와 상황도 삐딱하고 부정적으로 생각이 된다.

긍정의 힘을 발휘해보자라며 나를 토닥이고,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을 들어도 잠시 그때뿐 다시 먹구름이 내 마음을 뒤덮는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수술을 받고 4주를 쉬면서 마음을 잘 가다듬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술을 언제 받았냐는 듯 수술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을 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나를 보면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기저기 다른 곳도 아프기 시작했다.

질염에 걸려 낫질 않고 계속 재발하여 항생제를 먹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내인성 만성 두드러기로 밤마다 가려워서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그리고 탈모도 계속 치료가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나의 달력에는 여러 진료과의 진료예약들로 빼곡하게 1주, 2주, 한 달, 3개월 텀으로 채워졌고 식탁 위에도 약봉지, 약통이 늘어갔다.


나는 괜찮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 무엇보다 컸고 정말로 긍정적으로 나는 잘 이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누군가에게 비칠 내 모습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부정적이고 나약한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네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에 비하면 너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야. 힘들어할 게 아니야' 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나를 다독이고 나의 생각, 감정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그저 내 마음인데

힘들어지는 순간을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모른 채 그 감정들을 모른 채 외면하다 보니 나는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이 감정들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갑상선암 & 우울증'을 검색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어떤 분의 글을 읽고 펑펑 울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꾸 이렇게 모른 척 외면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감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여기저기 아프구나, 힘들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숨기려 하지 않는 것!

이 시간도 치료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나는 이 힘든 시간들이 온전히 지나가도록 그저 기다려야지.

나는 늘 괜찮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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