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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Aug 31. 2022

보석처럼 반짝이는 카리브해 푸른 바다에서

코수멜과 카리브해

크루즈의 마지막 정박지는 멕시코의 코수멜이다. 코수멜은 칸쿤보다 약간 아래쪽에 있는 섬으로 휴양지나 크루즈 여행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코수멜에서 오래 머무는 크루즈 상품중에는 스쿠버다이빙이나 치첸이트사를 가는 하루짜리 익스커션을 제공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다. 미리 알았다면 바하마를 포기하고 멕시코에 더 머물렀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이미 지나버린 일이라 무의미한 후회이기에 그냥 잊기로 했다. 한편, 코수멜에서는 마야 유적지인 툴룸이 가까워서 툴룸을 가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툴룸과 차코벤 사이에서 고민했었는데 툴룸에는 피라미드가 없어서 차코벤을 선택했다. 툴룸은 피라미드가 없는 대신 규모가 더 크고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풍경이 아주 아름답기에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면 될 듯하다. 물론 이틀 모두 마야 유적지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한국에서 멕시코를 가는 것은 비용도 거리도 만만치 않으니 있는 동안 한 군데라도 더 보는 것이 좋을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제 피라미드를 봤고, 카리브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툴룸을 가는 대신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카리브해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영화도 나오고 워터 파크의 이름도 캐리비안 베이라고 지었나 싶은 마음에 궁금하기도 하다. 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 코수멜의 항구에 정박하면 이런 새파란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사파이어도 이보다 예쁘게 빛나지는 않을 것 같다.


스노클링을 하려면 코수멜에서 작은 보트로 옮겨 타고 40여분을 더 이동해 열대어가 많이 있는 산호초 근처로 가야 한다. 보트에 탄 사람들은 이동하는 중에도 시종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나중에 들으니 크루즈 중에서도 멕시코나 카리브해 쪽으로 가는 배들의 승객들이 유독 흥이 넘친다는 모양이다. 스노클링 스폿에 도착해 한 시간 정도 물 위에 떠다니며 열대어를 구경했다. 열대어들이 사람에게 익숙한지 제법 가까이까지 왔다가 또 무리 져 멀리 헤엄쳐 사라져 가곤 했다. 몰디브에서 다이빙을 하며 보았던 열대어들과 달리 알록달록하고 예쁘지는 않았으나, 스노클링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기에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스노클링을 마친 후에는 근처 해변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 해변에서 바라본 카리브해의 풍경. 왜 다들 휴양지로 카리브해를 외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풍경이다. 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현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해변에 내리니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던 것 같은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끝도 없이 푸르고 깨끗한 바다에 햇살이 부딪혀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곳이 카리브해이구나!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다. 사람들은 해먹에 누워 쉬기도 하고 바닷가에 마련된 워터 슬라이드나 카약 등을 즐기며 놀기도 한다. 마침 패들 보드도 보이길래 나도 한번 도전해 봤는데 보드 위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아 어정쩡하게 서서 비틀거리며 노를 젓다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바다에 빠져 버렸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바다가 깊지 않고 물도 적당히 시원해 기분이 좋다. 나는 안전요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보드 위로 다시 기어올라간 후 패들 보드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냥 물놀이나 하기로 했다.


§ 튜브 위에 누워 신선놀음을 즐기는 남편. 둥실둥실 물 위를 떠다니다 보면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낙원 같은 시간.


§ 섬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코코넛 열매와 배 위에서 마신 달콤한 칵테일. 물놀이를 하니 기껏 칠하고 간 매니큐어가 하루 만에 떨어져 나가 버렸다. 바다에 갈 때는 젤 네일을 해야 하나 보다.


해변에서 한참을 놀다가 시간이 되어 크루즈로 돌아왔다. 몸에 묻은 소금물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코수멜 항구로 나와 근처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출항 시간에 맞추어 배로 돌아왔다.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의 하룻 동안은 신나는 쇼도 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핫텁을 즐기기도 하면서 크루즈의 마지막 날을 아낌없이 즐겼다. 코수멜에서 출발해 밤새 항해한 배는 아침 일찍 플로리다의 항구에 도착했다. 체크인과 마찬가지로 하선 과정도 일사불란해서 그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내리는 데도 혼란은 전혀 없다. 배에서 내리니 지난 일주일이 꿈만 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발 밑의 땅바닥은 그럴 리 없는 데도 마치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묘하게 출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과도기 없이 늘 단숨에 내동댕이 쳐지기 마련이라, 집까지 장장 여덟 시간에 이르는 운전시간을 생각하며 서둘러 정신을 차려 차에 올랐다.


§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른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비치. 바다 바로 앞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어 유명한 데이토나는 대서양이라 바다가 투명하지는 않은데 파도가 아주 좋아서 서핑을 즐기기는 안성맞춤일 듯하다.




처음 하는 모든 것들은 으레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라, 나는 몰라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거나 놓쳤던 들을 떠올리며 내 첫 크루즈 여행에서의 수없는 '만약'들을 곱씹었다. 만약 갈라 나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드레스라도 빌려 왔을텐데, 만약 코수멜에서 치첸이트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다른 상품을 골랐을 텐데 같은, 사실상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만약들을.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만약' 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해도, 그때는 또 그 나름의 아쉬움이 있었을 테고 나는 다른 종류의 '만약' 들을 뭉게뭉게 뿜어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직도 바다 위에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처럼, 모든 것들을 알았다면 아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울렁대는  땅멀미와 함께 '만약' 들을 떨쳐냈다. 나는 땅 위에 서있다. 내가 가야할 곳을 바라보며. 내가 가야할 곳은 분명하기에 나를 뒤로 잡아끄는 것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앞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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