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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Sep 10. 2022

내슈빌에서는 볼륨을 높여요

컨트리 음악의 도시, 내슈빌

애틀랜타는 조지아주에서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위쪽으로 접해 있는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와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이제 여름도 끝나가니 좀 돌아 다닐만 할거라고 잘못 생각한 어느 주말 - 나중에 알았는데 남부의 여름은 9월 말에나 끝난다고 한다 - 미국에 온 후로 언젠가 한번 가보리라 생각해 왔던 테네시의 내슈빌과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을 돌아보기로 했다. 두 도시 중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다가 첫날은 좀 더 거리가 있는 내슈빌을 가기로 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차로 3~4시간은 걸리니 아무래도 피로가 누적될 것을 생각하면 고생스러운 곳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한국에서 4시간이면 상당한 거리이지만 미국에서 4시간은 크게 부담이 없는 거리라 카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운전하는 사이 어느새 내슈빌에 도착했다.


§ 내슈빌의 명물 파티 웨건. 운전자가 별도로 있어 술을 마시며 합법적으로 고성방가를 할 수 있다. 이런 웨건이 도시 곳곳을 달리는 탓에 내쉬빌은 조용할 새가 없다.


도시로 들어서자 창밖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궁금해 가만 살펴보니 포장마차같이 생긴 웨건을 탄 사람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슈빌 명물인 파티 웨건인데 자전거 페달이 달려 있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페달을 굴러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파티 웨건이 도시 곳곳에 가득해 노랫소리가 끊기지 않는 모양이다. 음악의 도시라는 별명에 꼭 어울리는 내슈빌만의 흥겨운 인사인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백주대낮에 저렇게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대단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다들 손에 맥주 한 잔씩 들고 있다. 그럼 그렇지, 도저히 맨 정신에 나올 수 있는 텐션이 아니다 했다. 이 더운 여름에 에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까지 하셨으니 눈에 뵈는 게 있을 리가. 그래도 뭔가 신나 보여 나도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아는 노래가 없어 따라 부르지도 못하고 운전을 해야 해 술도 못 마시니 괜히 타봐야 허벅지 엔진으로 전락해 남 좋은 일만 실컷 하게 될 것 같아 포기했다.


§ 내슈빌의 컨트리 음악 박물관. 한쪽 벽에는 명반들이 걸려 있는데 아는 가수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을 피해 컨트리 음악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사실 컨트리 음악이 뭔지 자세히는 모르는데 설명을 읽으니 음악시간에 배웠던 <오, 수재너>나 <스와니 강> 같은 민속 음악을 뿌리로 해 발전한 대중음악 장르라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 서면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 교실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그 옆으로 전시된 유명 가수들의 무대 의상과 악기들을 돌아볼 수 있는데 개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과 자동차, 밥 딜런의 의상도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야 지금은 팝 가수라 해도 처음에는 컨트리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이해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나 밥 딜런은 컨트리 가수도 아닌데 왜 전시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신기해서 사진은 잔뜩 찍었다.


§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과 기타. 옆에는 그가 타던 캐딜락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클래식 카답게 납작하고 길쭉해서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다.


컨트리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박물관에서 상영하는 영상들을 보면 음반 판매량도 엄청나고 팬덤도 상당한 듯하다. 나는 컨트리 음악은 일종의 트로트이고 저 가수들이 이를테면 임영웅 정도 되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이해하며 박물관을 나섰다. 한편 내슈빌 거리에는 신기하게도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를 장착한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나중에 미국 친구에게 테네시에 카우보이가 많은지 몰랐다고 얘기하자, 테네시는 카우보이 하고 아무 상관이 없고 다만 그런 복장이 컨트리 음악의 상징과도 같아서 재미 삼아 입는 것이라고 한다. 디즈니랜드에 미키 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가는 정도의 느낌인 모양이다. 본디 뭐든 야무지게 즐기려면 복장부터 제대로 갖추어야 하는 법이니, 웨건에 올라타 도시가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려면 카우보이 부츠 정도는 신어줘야 할 것 같기는 하다. 


§ 내슈빌의 명물이라는 스파이시 치킨. 어디까지나 미국인 기준의 스파이시이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매운 음식 찾기 힘든 미국에서 맛있게 매콤한 치킨이다.


박물관을 나와 내슈빌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스파이시 치킨을 먹기 위해 유명하다는 <Hattie B's Hot Chicken>을 찾아갔다. 체인점이 많은데도 주말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대기 인원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주문한 치킨을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는데 한국인 입맛에는 아주 맵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다. 식사를 마칠 무렵에는 입술이 얼얼한 걸 보니 미국인들은 땀 흘려가며 먹을 듯하다. 식사를 마친 후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해 만든 내슈빌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 미술관은 그리스의 아테나 여신상을 같은 크기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유명한데, 내가 도착한 무렵에는 이미 미술관이 문을 닫은 후라 여신상을 보지는 못했다. 사실 모조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기도 해서 신전을 닮은 미술관 기둥 사이를 걸으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남부는 아직 여름이라고는 해도 해 저물녘 공기에 더위가 한 김 빠진 것을 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저기 어드메 가을이 오고 있는 모양이다.


§ 파르테논 신전을 따라 만든 내슈빌 미술관. 미국은 참 남의 것들 잘 가져다 쓴다. 건물도 그렇고, 도로나 도시 이름도 그렇고. 참고로 우리 옆 도시 이름도 아테네(Athens)이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느긋이 만끽하고 싶지만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까지는 차로 5시간 거리라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또다시 머나먼 여행의 시작이지만 낮에 본 파티 웨건의 승객들처럼 노래라도 따라 부르면 덜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카 스테레오의 볼륨을 높이자 엔진 소리가 음악에 묻히며 속도감이 둔해져 갔다. 차는 재빠르게 내슈빌을 빠져나갔지만, 차 안에는 여전히 가득한 음악 소리가 다정한 길동무의 속삭임처럼 감미롭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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