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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r 14. 2024

나의 기차

일곱살 시작기

현재가 과거가 되고, 과거가 추억이 된다.

올해로 만 5세(미운일곱살)가 된 아이는 어린이집을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겼다. 키즈노트에서 새 유치원으로부터 초대장이 왔다. 초대에 응함과 동시에 전년도까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의 기록들은 "추억보기"로 전환된다는 알림이 떴다. 얼마 전까지 분명 졸업시즌이라고 싱숭생숭했는데, 감정과 별개로 제도는 새 학기를 맞이할 준비가 본격적이었다. 제도는 나의 느린 감정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야속할 법도 한데 그런 얄짤없는 제도의 속도가 어쩌면, 나같이 느린 사람들도 비로소 현실을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른다.

아이가 미취학 아동으로 원에 다니는 부모라면 익히 아는 키즈노트. 언젠가부터 이것이 내게는 특정시즌을 알리는 도구가 되었다. 키즈노트를 누르면 로딩 중(?)에 뜨는 캐릭터가 2월에는 학사모를 쓰고 있는 어린이 었다면, 지금은 노란 병아리 모자쓴 입학 어린이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니까. 6살 수료를 한다며, 벌써 7살이냐며 언제 이렇게 컸냐며 혼자 난리치(여전히 난리침)던 마음은 강제로 과거행 티켓을 타고 떠났다. 매일 아침 종종거리고, 하루하루 그저 크게 아프지 않고 제발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지냈던 365일의 현재를 비로소 과거로 보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키즈노트가 웃는 얼굴의 완벽한 T형 체계로, 현재를 과거라는 말로 바꾸기도 무색하게 냅다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난주 (나와) 아이는 새 유치원에서의 긴장되는 첫 주를 지냈다.  당분간 집에서 차로 17분 정도 떨어진 거리를 오가야 하는 위치의 원이라 나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나를 우려했고, 나도 나를 우려했지만, 나도 아이도 무사히 심지어 안정적으로 새 유치원과 새 거리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싱숭생숭하던 지지난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먼 미래였던 지금을 현재에 두고 살아간다. 흐트러짐은 쉽고, 세우기는 어려워, 흐트러진 일상이 익숙해진 지금에서, 백만 번 일어나기를 외치고 한 번을 일어난다. 멀리 보면 늘 희극인 나의 인생 우리를 바라보며 주름 섞인 웃음을 짓곤한다. 여전히 기다려 주지 않는 T익스프레스는 현재행 티켓으로 오늘의 철로를 달린다. 친구들과 갔던 에버랜드에서 내가 그렇게도 타지 않겠다고 몸을 뺐다가, 막상 타고나면 침을 질질 흘리며 소리 지르고 웃고 나오던 몇 초 만의 T익스프레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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