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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r 07. 2024

소극


"건강만 하게, 불안하지 않게, 실수하지 않게, 기분 나쁘지 않게.."

오차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의도가 좋고 마음이 가는 것이라면 일단 지르고 보던 과거의 나는 여기에 없다. (물론 너무 앞만 보고 간 뒷감당이 흠이었지만) 어떤 과정에서든 두려움과 불안이 있을지 언정, 즐거움과 좋은 의도에 중심을 두고 살던 나는 없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 도리어 불안과 죄책감이라는 나를 누르는 이상 한 감정을 인지했고, 회피할 수 없어 마주하다, 아주 조금씩 극복해 간다. 극도의 불안과 질풍을 맞이할 시기면, 제발 이것만 지나가기를, 이것만 극복해도 꾸준히 더 겸허하게 살겠다며 다짐을 하다가도, 막상  시기가 지나면 생각이 바뀔때가 있다.

만약 내게 불안과 죄책감이라는 특별히 극복해야 할 감정 과제가 없었어도 이랬을까. 하기사 요즘은 티브이나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아도 손가락하나만 까딱하면 쏟아지는 자극적인 세상살이 정보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살인, 폭행, 참사, 전쟁, 분쟁, 이혼,  이 아니어도, "혹시 나도.. ㅇㅇ병?"라고 정보를 알려주는 듯하는 해맑은 색의 카드뉴스들도 그렇다. 불안을 부추기기만 하는 수도 없는 비전문가와 전문가들의 정보, 말말말.


그리하여 내가 불필요하게 쏟아지는 고난스러운 사례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는, 끝내는 나나 우리가 특별하고 특출 나게 가 아니더라도 '평범하게만' 꾸준히 가기를 바라곤 했다. '돈이 적든 많든, 평범하기가 제일 어려워. 보통 그것도 어려워.' 그놈의 평범이 뭔지, 어느 순간 무슨 부적처럼 주문처럼 새기고 있는 말이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타고난 가정도, 기질도 은근 평범한 과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자의적으로 굉장히 평범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이십 대 중반에 일을 시작했고, 연애에 이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이 각박한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한 명 낳아 키우고 있으며, 최소한 내가 선택한 가족에 관하여서는 특별한 건강이상도, 극단적인 갈등도 없다. 부부간에 누구나 겪을법한 사소한 갈등은 수시로 빚었다 풀었다 하고, 허리디스크나 역류성식도염, 경도비만, 귀찮은 감기 같은 때때로 염려는 되지만 일상의 조심과 일시적 불편으로 퉁이 되는 생활질병들과 싸우며 살아가니 말이다.
때론 이런 사소한 건강문제들조차 건강염려증이 되어 찰나의 망상과 싸우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더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지 라며, 더 부지런해지고, 더 규칙적인 인간이 되길, 운동에도 힘쓰자고 수만 번 마음먹고 한 번쯤 하며 산다.

생각을 잇는다.
불안을 없애려고 건강해지려는 길이, 불안한 상황을 많이 막아주긴 하겠지만, '바를 정'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은 기분 말이다. 나의 불안과 죄책을 없애려고 한 행동들이 오래되면, 되려 나를 옥죄는 듯한 행동패턴으로 굳어진다. 불안과 죄책을 더는 소극적 자유 말고, 기쁠 자유, 행복할 자유, 더 큰 일을 할 자유 같은 적극적 자유들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잊거나, 포기하며 살게 되니 말이다. 나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는 답시고 아이에게 직접 '불안' 하다는 소리를 한다거나 채근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아이는 나의 불안을 모르는 것도 아닌 듯하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그러려니 하는 무던한 성격은 아니란 뜻이다.

사실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사가 다양하고, 돈을 버는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하고 싶은 게 많은 편인데, 언젠가 한다는 생각과 믿음은 있지만, 결혼과 출산 양육이 맞물리면서 모든 것이 중단, 포기 혹은 무기한 연기된 기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한 선택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 출산 육아와 적당한 경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직업적이거나 무보수여도 뜻을 품는 가정 외 활동을 잘하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것이다.

소극적 자유에 익숙해지고 가끔 눈을 뜨면, 당시엔 몰랐던 적극적 자유의 상태에 내가 겪은 엄청난 줄 알았던 사회적인 갈등과 노력과 예상하거나 예상치 못한 기쁨과 성취, 심지어 피로와 과도한 일들이 그립기도 한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지금 상태 자체를 즐기며 잘 해내는 편안한 인간이 되는 것도 좋겠다. 아이를 낳았으니, 이 아이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는 것이 큰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위로는 그뿐이고, 그것이 대단한 힘이나 자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택한 가정과 육아를 소홀히 하고 싶지도 않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제일 문제다.

일기가 아닌, 글을 쓰려면 자기 검열을 하지 말라는데, 도저히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날들이 있다.

지금이 그날이다.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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