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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pr 08. 2024

담배



보통 주차를 지하에 하는데, 아주 가끔 집 앞 지상에 자리가 나면 대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경비실 옆, 좁지만 한쪽 문옆이 비어 어쩐지 탐나는 그 자리. 오전에 주차를 해놓고, 오후에 나와 차에 타는 중이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경비실 뒤쪽과 분리수거장이 맞닿지만 1미터쯤 남는 협소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굳이 저길?'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곳도 아닌데 혹시.
이내 안보는 척 핸들을 만지며 흘끗 눈동자만 돌렸다. 여성은 멀리서도 유독 하얗게 티가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가만 보면 예전에 비해 흡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 아빠는 담배를 안 폈지만 (골초였다가 끊었다는데 실제로 우리 앞에서 흡연하는 걸 본 적이 없음) 어쩌다 집에 친구분들이 오는 날이면 안방이며 곧 집안 전체로 남아있던 자욱한 담배연기와 손님들이 간 후에도 오래도록 남아있던 냄새를 기억한다. 제수씨라 부르는 우리 엄마한테 잘 놀다 간다고 미안해하면서도 담배를 안 피우는 건 아니었다.


집안에서 이러니 외부인 식당 안에서 흡연가들은 쉽게 볼 수 있었고, 술집은 더욱 그랬다. 대단하게 깔끔하거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을 제하고, 고깃집이나 국밥집 같은 곳에 들어갔을 때 음식냄새가 아닌 담배냄새가 손님을 맞이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유독 담배 피우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 테이블은 조금 피해서 앉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 가끔 가던 피시방과 노래방은 미성년 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담배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담배'쩐내'가 심각했다. (담배연기를 싫어했던 나는 피시방만 갔다 오면 몸살이 났다.) 어쩌다 한번 거기 놀고 오는 날이면 우리는 분명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도, 내 자체가 황갈색 물이 조금 담긴 재떨이에 꼬나박혀있는 꽁초가 되어있는 기분이었다. 막 피워 올린 흰 연기냄새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쩐'내여서 더 싫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특이점은 이거다. 집에서 방문을 타고 피어 나오는 담배냄새도, 음식점을 가득 매운 담배연기도 지금 어쩌다 길거리서 맡게 되는 그 냄새보다 못마땅하고 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어린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흡연가들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전이 후했고 현재가 박하다.

그러다가 이십 대 초중반즘(2010~)부터 음식점에서 금연의 법과 제도가 시작된 걸로 안다. 나는 흡연자가 아니었으니, 큰 이슈가 아니었는데 흡연자들끼리는 서로 눈치 보고 쉬쉬하거나 법을 지키는 시늉을 하던 그들만의 속삭임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도 이젠 새삼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얘기여서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면 술자리나 음식을 함께하는 사람들 중 애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끼리 나가 '식당 밖'에서 흡연을 하는 게 일상이긴 했다. 더 기억을 거슬러보니, 대학에 갓 입학했을 당시(2008)다. 학과 생활 중에는 대학가에 작은 술집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테이블이란 테이블은 다 끌어다 굳이 긴 줄을 만들어 학과동기들과 선배들이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며 놀던 때가 있었다. 그중에 가장 끝에서 한두 명 정도 안쪽에 앉았던 학회장오빠는 분명히 거기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실내 흡연이 자연스럽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실내 흡연을 쉬쉬하면서도 눈치를 보며 피거나, 점점 나가서 피는 문화가 공존하는 듯하다 어느새 지금은 실외흡연이 당연해졌다. 비흡연가입장에선 아주 좋은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태도가 진즉 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정도다. 한편 카페도 내부에 연 구역이 따로 있는 곳이 이십 대 중후반까지도 꽤 많았는데, 최근엔 그런 카페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아예 무조건 '나가서' 피워야 하는 모양이다.

실내는 물론이고, 주거구역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간에서 담배는 찬밥신세가 다. 우리 아파트에도 때 되면, 아파트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니 말이다. 나 역시 길에 걸어가면서 눈치 보지 않고(사람이 지나갈 때 눈치 보는 사람들은 용서다) 담배연기를 많이 내뿜는 사람이 있으면 거의 일부러 보란 식으로 손으로 연기를 세차게 휘휘 저으며 얼굴에 갖은 인상은 찌푸려 주고 간다. 비흡연자의 입김이 세진 기분이다.

또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흡연공간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나 번화가에 가면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이라고 불러야 될 것 같은 앳된 청년들의 남녀 흡연비율은 거의 일대 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의 맞담배 모습도 열외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화의 대상은 젊은 여성(일종의 미혼처럼 보이는)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길거리서 무심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며 흡연장소가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보기가 힘들다. 여기서 오해금지는, 성별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담배를 피워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결혼은 여성의 임신출산과 관련이 되는 경우가 많고, 임신과 흡연은 치명적인 위험이 예기되는 상황이므로 상식적으로 임신출산이 이어지면 흡연가인여성들도 금연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에서 이어지는 동태와 시선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족이나 내 사람'으로 여겨질 사람에 관해서는 흡연에 대해 아주 박한 사람이다. 여성을 제외하고 남성의 경우 결정적으로 결이 맞는경우는 다 비흡연자이였고 지금도 그렇다(남편=끊은거 아니고 애초에 비흡연자. 흡연하면 나도 같이 피우겠다함).


이와 별개로 암묵적으로 여성에게 특히 박한 시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과연 내가 유부녀에 엄마인 지금의 위치에서 흡연자라면 분리수거장 앞에서, 아파트 정자 재떨이 앞에서, 길모퉁이에 서서 담배를 피울 수 있을까.


경비실과 분리수거장 1m 틈바구니에 쪼그려 앉아 피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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