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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Sep 25. 2019

6000원보다 못한 죽음

가난한 인도인보다 못한 한국인의 죽음

골목에서 플레인 라씨를 먹고 있었다. 멀리서 남자들이 무언가를 어깨에 이고 노래를 부르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그들은 시체를 들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시체를 본 순간이었다. 한국은 시체를 관에 넣어 실제로 보기 어렵다. 바라나시에서는 강 위에 둥둥 뜬 사람 사체 버펄로 시체 등 각종 동물 사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 바라나시는 죽음의 도시다. 갠지스강 길에 따라 있는 화장터들은 왜 바라나시가 죽음의 도시인지 설명한다. 이곳에선 힌두교의 전통 장례 문화로 인해 도처에서 시체를 쉽게 볼 수 있다.


인도인들은 힌두교의 성지인 갠지스강에서 장작을 이용해 시체를 화장한다. 모든 사람 앞에서 발인하는 셈이다. 관광객인 나는 멀찌감치에서 발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갠지스강을 따라 길을 걷고 있었을 때였다. 사람들은 시체를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고 조립하듯 두꺼운 장작을 겹겹이 쌓고 그 위에 시체를 올렸다. 그리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시체를 감싼 천이 타기 시작했다. 약 3시간 뒤 노년 여성으로 추정되는 육신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다. 사람들은 화장을 마친 후 잿가루를 갠지스강에 뿌렸다. 그들은 강의 신이 망자를 보호할 거라는 바람을 담았을 것이다. 


장례식을 보고 있었다. 한 인도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힌두교의 장례 문화를 알려줬다. 인도인들은 바라나시에서 장례를 치르는 게 숙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에서 생을 온전히 마감하고 싶어 한다. 또 인도인들은 반드시 장작으로 화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세에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작은 인도 서민에게 비싼 편이다. 장작 값 250루피, 한국 돈으로 6000원이다. 물론 6000원은 한국인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요즘 6000원이면 김밥천국에서 한 끼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10루피, 한국 돈 180원도 없는 인도인들이 몇억 명이나 있다. 그래서 인도 정부는 저렴하게 화장할 수 있는 전기 화장터를 마련했으나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No problem의 나라 인도, 장작 살 돈이 없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장작이 없거나 모자란다면 그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죽은 이를 위해 장작을 마련한다. 나는 인도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한국은 가난한 사람도 장례를 온전히 치를 수 있도록 개개인이 연대했던 적이 있던가? 한국의 장례란 지독하게도 현실이었으며 해치워야 할 일과처럼 진행된다. 슬픔을 느낄 여지도 없다. 


작년 여름 이맘때 즈음 친할머니가 향년 93세 숙환으로 별세하셨다. 머리가 크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지켜본 장례식의 풍경은 망자보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의 영정을 모시는 것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조문객들이 오기 편하도록 부산 중심가에 장례식장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부산 시내 중심가 일대 장례식장 자리가 다 차는 바람에 할머니의 영정을 안치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도 부산 외곽 쪽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시신을 모실 수 있었다. 


친할머니의 공식적인 장례 기간 내내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슬픔조차 느낄 여유가 없어 보였다. 당장 닥친 돈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회사에서 주는 장례 보조비를 신청하고 조의금을 정산하느라 바빴다. 장례 절차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는 금전적인 문제를 마무리 짓느라 한동안 부산에 머물러계셨다. 아버지와 같이 조의금 장부를 작성하던 친척 오빠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장례식에 와서 누가 왔는지 얼마 주고 갔는지 다 기억나더라.”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요상한 안도감이 든 적이 있다. 골방에서 조용히 허무하게 죽어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태초에 존재했던 것이 아닌 마냥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탑골공원을 지나다 우연히 어떤 아저씨의 말을 엿들었다. 그는 지인에게 김 아무개가 쪽방에서 죽었는데 며칠 뒤에 발견됐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궁금해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이런 일이 흔하다고 답했다. 인도인들처럼 장작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국가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죽음에 비정함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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