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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쓰 Jan 17. 2021

[영화 리뷰]나이 먹을수록 달라지는  가족의 의미

-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다시 보고 -

  우연한 기회로 이벤트에 당첨되어 2주동안 왓챠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뭘 볼까 하다가 왓챠에서 가장 핫하다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선택했다. 초등학생 시절 정말 좋아하던 작품인데다가, 원서까지 사서 봤었는데 막상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 8편의 시리즈를 다시 보다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롭게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그 중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해리의 유일한 가족 사진


  <해리 포터>에서 ‘가족의 사랑’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도드라지게 표현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해리가 볼드모트의 저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부모의 사랑 덕분이라고 작품에 수 도 없이 나오기도 한다. 어릴 적 나는 이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음~ 그렇구나.’ 정도로 끝냈던 것 같다. 그런데 십여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세상에, 해리포터를 엉엉 울면서 봤다. 나원참.


  해리는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가족의 따뜻함이라고는 모르던 아이였다. 친척으로부터 학대를 받아오다가 호그와트에서 부모님의 잔상과 사랑을 느끼고, 그것의 도움으로 절대 악인 볼드모트를 무찌른다. 해리의 부모님은 해리가 위험에 빠질 때 마다 나와 도움을 준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에서 해리가 볼드모트를 마주쳤을 때 부모님의 영혼(혹은 잔상)이 나와 해리가 도망갈 수 있게 시간을 끌어준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에서는 볼드모트에 맞서기 위해 떠나는 해리에게 '항상 너와 함께 있을거'라고 한다.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부모님이 느껴져서 정말 많이 울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끔찍한 효녀같겠지만, 나는 오히려 탕아에 가까웠다.


"Always"

  

  대학을 가면서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꽤나 보수적인 집이기도 했기에 그 자유가 너무 좋았다.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가도 금방 다시 올라와 혼자 지냈다. 뭘 특별히 하진 않았어도 집에 있는 게 싫었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사는게 그렇게 좋았다. 나는 혼자서도 밥 잘해먹고 잘 지냈고, 연락도 거의 하지 않은 채 가족을 잊고 지냈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치사하고 더러웠다.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세계에서는 선과 악이 굉장히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현실 사회는 그렇지 않다. 뭐가 선인지 악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저 무사히 살아남아야 한다. 인생은 실전. 빠른 속도로 자존감이 낮아져갔고, 밝고 생기 있던 모습에서 피곤함에 찌든 사회인으로 변해갔다. 뭐가 이리도 버거운지.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아 많이 외로웠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알게되었다. 나에게 도움 될 정보들을 모아 매일 알려주고 충고해주는 아빠, 내 생각만 하면 착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가 항상 내 옆에 있었다는 걸. 맹목적인 사랑이 언제나 나를 향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외롭고 힘들다며 징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험한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나를 위해주는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해리가 소망의 거울을 통해 본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따뜻한 눈빛


  예전에는 집에 잠시도 있지 못하고 3일이면 나오고 했었는데, 지금은 일주일동안 집에 있어도 떠나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는 휴가를 집에 내려가서 보냈는데, 배웅해주는 가족들을 보내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정말 옛날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맹목적인 사랑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그것을 떠나는 두려운 마음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해리는 모든 고난을 이겨낸 후 나이가 들어 본인이 부모가 되어 가정을 만들며 산다. 본인이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도 주며 살겠지. 해리는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나도 사랑으로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다. 이 것을 깨달으면서 부담이 커진 부분도 있다. 나는 내가 부모에게 얼마나 아픈 손가락인지도 잘 알기에 성장하기 위해 정말 매일을 더욱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자주 연락해서 안부도 물으며 자주 표현도 한다. 시크했던 딸이 애교도 부리고 하니 더 좋아하시는 기색이다.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며 살아야지. 오늘도 그 책임감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늘 함께 있는 든든한 나의 버팀목, 나의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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