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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Nov 22. 2016

터키는 왜 디저트 왕국일까



아직 터키에 쿠데타를 빌미로 대규모 숙청의 바람이 불기 전, 다에쉬(흔히 IS라고 알려진)가 국가를 자처하기 전, 이스탄불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전이었던 2012년 여름의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상징인 아야 소피아에서 전철길을 따라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이어지는 비탈길을 내려가다 보면 과자가게가 많이도 보였다. 바클라바, 로쿰, 피스마니에, 헬바, 수틀락... 알면 알수록 종류가 끝도 없지만, 아무래도 진열장에 제일 많이 보이는 건 산처럼 쌓은 로쿰과 실타래처럼 늘어뜨린 수주크가 아닐까. 아직 터키 디저트를 제대로 맛보지도 않았을 때, 슬렁슬렁 그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과자 가게 진열장을 보고 기겁을 했다. 진열장 안에 곤충이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설마 파리?! 저렇게 대놓고 파리가 날아다니는 과자점이?     


...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다 꿀벌이었다!


터키 전통과자 대부분이 설탕이 아니라 꿀을 쓴다지만, 그걸 과시하려고 내버려둔 걸까. 과자가게 주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으니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잊을 수 없는 맛. 100년 전통 귤루올루의 바클라바Baklava


어쨌든, 내가 터키 음식에서 제일 놀랐고 아직까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주식이 아니라 후식, 디저트였다.


터키 과일은 하나같이 맛있었고, 빵도 맛있었고, 고기 요리도 나쁘지 않았지만. 디저트는 압도적이었다! 

이제까지 꽤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터키에서만큼 디저트를 많이 먹은 여행지가 없다. 원래 단 것에 열광하는 취향도 아니고, 터키 디저트는 그냥 단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단데도 말이다. 


끔찍하게 달다고만 생각했던 바클라바도 잘 만들면 이렇게 고급스러운 맛이었다니. 


알고 보니 터키의 디저트 계는 유럽에서도 유명했다. 전통 과자류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여 해마다 수상작이 나온다나. 그러고 보니 이스탄불 어느 카페에서는 "닭가슴살을 넣은 푸딩"이 있기에 먹어보기도 했는데, 순수하게 호기심에서 주문한 것 치고는 놀랍게도 맛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퀴네페Künefe- 버터 듬뿍 넣고 시럽에 적신 패스트리 겹겹에 치즈를 넣고 구워서 견과류를 얹는 열량 덩어리. 중세 아랍문학에 '쿠나파'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렇게 터키 디저트를 찬양해대자 지인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터키 디저트는 왜 그렇게 달까요?”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검색도 해보고, 고민도 해봤으나... 돌이켜보니 이 질문은 핀트가 잘못됐다. 인류가 언제 단 것을 싫어했던 적이 있던가. 단 음식이 곧 사치였던 역사가 얼마인데. 그보다는 이토록 단 음식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게 된 배경을 물어야 하리라. 


당시, 이유가 뭘까 생각하며 나눈 가설들은 아래와 같았다.     


1. 풍요로운 자연. 이건 식문화 발전의 기본이다.      

2. 당도 높은 과일. 터키는 과일이 많이 나고, 햇빛이 강해서 아주 달다. 그렇게 단 과일을 먹다 보니 그걸 재료 삼은 디저트도 발전한 건 아닐까. 

3. 오스만 제국의 번영. 복잡한 기술을 요구하는 조리법은 당시에 많이 발전했다고 여겨진다.      

4. 이슬람 문화. 특히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단 음식을 흥청망청 먹던데, 혹시 관련이 있을까?  


이쯤에서 생각 정지.      


로쿰Lokum(일명 터키쉬 딜라이트)이라고 생각했지만 잘 들여다보니 젤리같은 로쿰과 누가같은 헬바Helva, 엿같은 과자들이 섞인 선물상자. 


과일 푸딩- 푸딩 역시 이미 95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쓰인 바그다드 요리책에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는 보통 무할레비라고 부르는데, 끊임없이 새로 개발하는 듯. 


그런데 최근에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옮김, 어크로스)]라는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대목에 맞닥뜨렸다. 


(페르시아인들은) 뚜렷한 요리는 별로 없지만 식사 뒤에 '디저트epiphoremate'로 나오는 것이 많으며, 한 코스가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에서는 식사를 마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식사 뒤에 디저트라고 할 만한 것을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디저트가 차려진다면 그처럼 금방 식사를 끝내지 않을 텐데.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재인용)

... 바그다드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예전에 페르시아에 속하던 지역에 건설되었고, 그곳에서 칼리프의 위대한 요리사들은 달콤한 아몬드 페이스트리 라우지나즈와 끈적끈적한 사탕 팔루다즈, 시크바즈처럼 시큼한 요리, 여러 가지 달콤한 스튜 등 페르시아의 디저트를 빌려오고 더욱 풍부하게 하여 요리의 새 물결을 일으켰다. 

어랍쇼.  이렇게 되면 내가 세운 가설 중에 4번은 선후가 바뀐 셈. 페르시아 제국이 정확히 지금 터키와 이란 지역에 자리 잡았으니, 그때부터- 즉 기원전부터 이 지역은 디저트를 좋아했다는 얘기! 지금 터키의 화려한 디저트들은 페르시아에서 기원해서 풍요로운 제국 시절에 더 발전했다고 봐야겠다. 


아래 사진을 올릴 푸딩이나 바클라바, 퀴네페 같은 디저트가 다 페르시아 시대부터 있었는지는 보장할 수 없으나, 10세기 이전에 남겨진 아랍 문학에서 언급된 증거는 나와 있다. 더 나아가서 지금 유럽에서 주로 먹는 디저트류 대부분이 고대 페르시아 혹은 아랍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역시 음식 발전은 풍요로운 자연 + 문명의 번영이라는 답으로 수렴하는 걸까. 


*

그 외에

사프란과 로쿰으로 유명한 사프란볼루에서, 커피와 로쿰

그러고 보니 말인데, 터키에서는 커피보다 차를 훨씬 많이 마신다. 커피는 비싸다.


귤라치트르: 장미 디저트. 주로 지중해 인근에서 파는 느낌.

나에게 이 디저트를 극구 추천한 국적 모를 여행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저 그랬다.


수틀라지(라이스 푸딩). 의외로 든든.



바클라바 찬양을 하긴 했지만, 실은 귤루올루라는 바클라바 명가 외에 다른 곳에서 사 먹었을 때는 여전히 한 개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달아서... 


이외에도 이름 모를 사탕과 과자류가 다양하고 아이스크림, 셔벗, 케이크, 파이, 쿠키, 초콜릿도 당연히 있다. 

디저트 광이라면 터키에는 꼭 한 번 가서 섭렵해보시길. 


특히 단-짠-단-짠의 역사적 구현인 퀴네페를 추천한다. 

바클라바나 로쿰은 국내에도 파는 곳이 있지만 퀴네페는 아직까지 못 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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