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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Aug 20. 2016

말랑에서 브로모 화산 가는 길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부, 브로모 화산 1

나는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특별히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느낌이 물씬 나서 좋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느낌이었던 당시 기분이 떠올라서겠지. 말랑 시에서 브로모 화산이 자리한 분화구(브로모 텡게르 스메루 국립공원)로 진입하는 길목의 산골 마을.  


*


인도네시아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화산일 구눙 브로모는 자바 섬 동쪽에 있다. 대부분 배낭여행자들은 자바 섬 중앙에 있는 족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자바 섬을 가로질러 발리 섬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브로모 화산에 들른다. 해서 아예 족자카르타부터 발리까지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브로모 화산, 이젠 화산에 들르는 투어 코스가 있다. 이게 루트 1번. 강행군으로 몸이 힘들지만 가장 싸고, 가장 시간이 덜 드는 방법이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따로 움직이는 여행자, 또는 자바 섬 동부의 중심도시 수라바야에서 이동하는 여행자는 대부분 분화구 동쪽으로 빙 돌아서 쁘로볼링고Probolinggo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중간에 미니버스를 갈아타고 분화구 입구 마을 쩨모로 라왕으로 간다. 이게 2번. 투어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돈도 가장 적게 들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쁘로볼링고 버스 터미널은 유난히 심한 호객행위와 사기행각으로 유명해서 피하고 싶었다... 그 악명은 결국 브로모를 떠날 때 실감하게 되지만,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자바 섬에 간 이유 중 첫 번째가 보로부두르 유적, 두 번째가 브로모 화산이었건만 실은 족자카르타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브로모 화산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바로 두 달 전인 2016년 1월의 큰 분화 이후 몇 달째 입산 금지 상태로, 고생해서 갔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 전망대에서만 구경했다는 후기가 속출했다. 그러나 멀리서는 정보가 확실치가 않았다. 고민하던 나는 자바 섬 전체 지도를 보고 생각했다. 말랑? 이 도시가 브로모와 가까워 보이는데 거기 가면 뭔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도시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약간 고지대라서 덜 덥다는 말에도 혹했다. 그래서 일단 족자카르타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 걸려 말랑으로 갔다.


말랑에 대해서는 나중에 쓰고... 말랑 숙소에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그 사이에 브로모 화산이 열렸다. 이건 좋은 소식. 그러나 말랑에서 들어가는 투어는 생각보다 비쌌다. 일인당 70달러라니. 에라이. 둘이 합쳐 그 이하로만 쓸 수 있다면 다른 루트를 써보자.


해서 찾은 방법이 3번. 말랑에서 미니버스로 아조사리Arjosari 버스 터미널까지 이동한 후, 택시로 뚬빵이라는 마을까지 이동, 거기서 지프차를 빌려 응가다이 마을을 거쳐 분화구 통과, 쩨모로 라왕에 내리는 것. 앞서 1, 2번과 비교하면 돈도 들고 몸도 고생하는 루트 되시겠다. 짐이 적다면 아예 오토바이 택시를 써서 가격을 대폭 낮출 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두 명에 짐까지 있었고 말랑에 돌아갈 계획이 아니었던지라-라는 장황한 이유로, 결국 지프차 대여. 흥정을 썩 잘하지 못해서 생각했던 상한선 근접하게 지불했다. (그래도 2인 140달러보다는 적게 들였다.)


우리가 겨우 빌렸던 지프차. 흥정이 어려웠던 데에는 우리의 출발 시간이 대부분의 지프차-투어 출발 시간보다 한참 늦어서 남은 차가 별로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쩝.


그래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 브로모를 한껏 만끽하고 싶다면 이 루트도 추천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흡족하게 기억하는 선택이다.


사진을 똑바로 찍어도 원래 풍경이 이런 각도로 펼쳐져 있다. 가파른 비탈에 특별히 평평하게 각도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 없이 집들을 세워놓아, 실제로 보면 더 기묘하다.


초라하지만 돈은 야무지게 받는 국립공원 경비소를 통과해서 큰 분화구(텡게르 크레이터) 가장자리를 넘어 내려가면 초원이 펼쳐진다.


이 산 모양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생각해보니 신장-위구르 지역에 있는 화염산이 딱 이렇게 생겼다. 모양은 같은데 화염산은 녹색이라곤 한 톨도 없이 붉은 모래와 흙으로 이루어졌고, 여기는 초목에 뒤덮였다는 차이뿐이다. 아무튼 이쪽 산동네와 초원은 앞서 이야기한 1번이나 2번 루트를 택해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풀이 무성하지만 그 아래 흙은 검다. 그리고 차를 달리다 보면 곧 풀이 다 사라진 검은 바닥이 드러난다. 화산재가 내려앉아 '모래 바다'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얼마 전에 다 쓸려나가서 길도 없고 표지라고는 새로 박은 티가 역력한 나뭇가지뿐, 날도 흐리고 빗방울까지 떨어지니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아 더 기분이 이상한데, 뜬금없이 말을 탄 사람이 달려 지나간다.


우리가 구경하는 동안 말없이 서 있던 운전사 청년.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쩨모로 라왕까지 잘 데려다줬다. 우리가 흥정을 잘 못한 만큼 저 청년이 돈 더 벌고 기뻐했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이 모래사막을 가로질러서 분화구를 다시 올라가면 쩨모로 라왕. 거기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숙소를 잡아 들어가니 겨우 점심 무렵이었다.


*

말랑에서 브로모 가는 방법. 내가 참고한 글은 여기에 있다.


브로모 화산 입장료 역시 수년간 엄청나게 올라서 보로부두르 못지않게 비싸다...라고 해봐야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만 원 정도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현지 물가가 익숙해서 히이익 소리가 나온다. 말랑 쪽에서 들어갈 경우에도 티켓을 사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 대신이랄까, 쩨모로 라왕까지 갔다가 거기서 다시 브로모에 들어갈 때까지 쓸 수 있다. 2일이나 3일 티켓이 없는 곳이라 이건 꽤 요긴할 수도 있을 듯.


그러나 물론, 산길 승차감이 좋을 리 없다. 멀미가 심하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겠다.


뭔가 빼먹은 정보가 더 있을 텐데, 아직 브로모 화산에 간 얘긴 따로 써야 하니 생각나면 그쪽에 덧붙이련다.


-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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