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야경
나가사키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나가사키의 밤 풍경이 일본 3대 야경이라는 말.
그게 끝이 아니다. 신(新) 세계 3대 야경에도 뽑혔단다.
나가사키 여기저기에도 적혔고 여행책자에도 실려 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그 세계 3대, 세계 5대, 세계 7대... 이런 건 누가 뽑은 건진 왜 안써줄까.
일본 3대 야경은 그렇다 치고, 세계 3대 야경은 누가 뽑은 건지 써줘야 할 거 아냐.
받아적기만 하지 말고 누가 어떻게 뽑았는지 좀 써달라고.
세상에 순위 뽑기를 일본만큼 즐겨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5대 성인같은 말까지 만들어내는 나라니, 아마 세계 3대 야경도 일본에서 만든 말일 가능성이 높겠지. 물론 그 순위 뽑기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온갖 대회들 - 에키벤 그랑프리, 라멘 그랑프리, 향토요리 대회 등등 - 은 마을 발전이나 관광 상품 개발에 효과적이다. 내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확실하다.
당장 나만해도, 미심쩍어하면서도 호기심을 품긴 하잖아.
아무튼 다시 '3대 야경'으로 돌아오자면-
검색을 이리저리 해보고 나가사키가 포함됐다는 "신 세계 3대 야경"의 주체를 찾긴 찾았다.
사단법인 야경관광 컨벤션... 이게 대체 뭐하는 집단이람. 라멘 그랑프리 쪽이 더 공신력 있어 보인다 -_-;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정체 모를 '신 3대 야경'으로 같이 나온 이름이 홍콩과 모나코. 구 3대 야경인지, 아니면 그냥 몇 년 전 기록인지 모르겠지만 또 어떤 책에서는 홍콩, 나폴리, 하코다테를 말하기도 하던데, 어쨌든.
모나코와 나폴리는 1999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름다웠던 것 같고. 하코다테는 따뜻한 불빛이라 좀 다른 감동이 있긴 했지... 그렇지만 양쪽 다 들어간 홍콩은, 흐으음.
솔직히 홍콩 야경을 세계 최고로 꼽는다면 나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다보니 전망대에 올라가는 버스를 예약하면서도 나가사키 야경에 대단한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실컷 궁시렁거렸으니 반전이 있어야겠지.
나가사키 밤 풍경에는 감동이 있긴 있었다.
(밝게 찍어본 사진과 조금 더 맨눈으로 봤을 때에 가깝게 찍어본 사진. 물론 둘 다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
나가사키 야경의 아름다움은 빛이 아니라 어둠, 있음이 아니라 없음에 있다.
일단 불빛 자체가 그렇다. '날 봐! 날 보라고!' 화려하게 뽐내기보다는 '여기 사람 살아요' 같은 느낌이 드는 따뜻하고 단단한 야경이랄까. 게다가 이나시야마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버스길 20분 내내 조명이 거의 없이 캄캄하고, 전망대 자체도 조도를 낮추어 두었다.
그게 왜 중요한고 하니, 이런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야경 위 맑은 밤하늘에 뜬 별이 보인다.
땅에는 사람의 불빛, 하늘에는 별.
물론 하늘의 별을 함께 담는 건 어지간히 좋은 사진기가 아니면 무리. 이 경우 사진은 아쉬움만 남긴다. 직접 가서 봐야만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게 또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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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경을 보러 갔던 건 2015년 12월이고, 원래 전망대까지 운행하는 로프웨이는 2016년 초까지 보수 공사 중이었다. 해서 나는 나가사키 역 관광안내소에 물어보고 역 앞에서 출발하는 1000엔짜리 투어버스를 예약 이용했다. 알고 보니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셔틀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투어버스로 올라가면 올라가서 40분밖에 머물지 못하는 게 단점인 대신 편하고, 12월에는 날씨가 추웠고 혼자 갔기 때문에 그 정도가 딱 좋았다. 물론 렌트카로 여행한다면 운전해서 올라가는 것도 좋을 듯.
(투어버스는 하루 다섯 번 운행. 좌석 수가 제한되어 있어 예약을 받는다)
로프웨이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지, 그냥 비수기라 그런지 관광객이 적었던 것도 야경 감상에는 가산점.
인생 야경까지는 아니라도, 확실히 볼 가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