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기막힌 순간이 있다
진짜 어른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이 땅에 태어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그럭저럭 살다 보니 나는 어느새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밀려오는 세상의 거센 물결에 내 인생은 여전히 만만하게 출렁이며 어른어른한데 그런 나를 세상은 어른이라 규정한다. 어른의 굴레는 나를 엄격히 통제하며 여러 가지 제약만 던져준다.
어른? 내가 진짜 어른이 맞나?
나는 아직도 어린것 같은데 아니 여린 것 같은데 내 육체도 내 마음도 날이 갈수록 시들어만 간다.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온갖 증후군은 다 가지고 있고 고혈압 약은 기본이요 고지혈증 약은 1+1 이요 비타민제는 옵션이 되어버렸다.
내가 어릴 때 그 당시 친구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잖아요” 하면서 떠벌리고 다녔다. 어른이 되면 돈도 벌고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만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요즘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어른이 돼도 돈은 생각보다 못 벌고 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부모들이 더 많이 사주고 하고 싶은 것도 빚을 내서라도 해주니까 눈치 빠른 그들이 어른이 되려 하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만 남아 버린, 어른의 장점이 사라져 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참된 어른이 없다고 하는데 그런 어른이 없기도 하겠지만 진짜 어른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국어사전에 정의를 보면,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하거나 ‘결혼을 한 사람’ 또는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육체적으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다. 다 자랐다는 의미이다. 어른의 필수조건이 성립되었다.
근데 나이가 들수록 키가 작아지는데 이런 내가 어른인가?
키는 40대 초반부터 10년 단위로 1.27cm씩 줄어든다고 한다. 척추 디스크에 있는 액체가 줄어들어서 생기는 압축 현상이라고 한다.
한편 평균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더 크다고 한다. 원인은 사춘기가 시작되는 차이 때문이고 남자가 여자보다 더 늦게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남자가 여자보다 더 어른으로 인식되었나? 그러면 전 세계 농구선수들이 제일 어른인가?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키 큰 사람은 암 위험률이 더 높다고 한다. 키가 크면 체내에 세포수가 더 많고 그래서 종양이 생길 가능성이 일반 사람보다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참된 어른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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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서 현재 내 삶에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고 있다.
남한테는 눈과 귀를 닫고 나에게만 내 가족에게만 몰두하는 나는 책임을 지는 어른인가?
괜찮은 사람의 기준을 세워 놓고 행동하지는 않지만 핑계의 지질함으로 책임질 상황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여우처럼 다양한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며 남에게 떠넘기기를 잘하는 우등생은 아니다.
나는 자동차 과태료도 기부한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납부하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절대로 주정차하지 않는다. 뜻밖의 재난재해로부터 나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실손보험과 생명보험을 적절히 가입하였으며 1년에 한 번씩은 보험료를 청구하여 가족사랑을 실천한다.
또한 나는 가족의 영양가 있는 식단을 위해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고 대신 서비스를 많이 주는 반찬가게를 주로 이용한다. 삶의 쾌적함을 위해 인터넷과 스마트 TV 이용 계약을 3년마다 재약정해서 사은품으로 상품권을 받아 가계경제에 이바지한다.
나는 결혼한 지 15년 차를 넘긴 세 식구 가정의 맞벌이 육아 남편이다.
결혼은 했으니 나는 어른인가? 결혼은 일종의 성인식인가?
조선시대 남성들은 보통 15세를 전후해 길게 딴 머리를 풀고 말아 올려 관을 씌우는 '상투를 트는 성인식'을 했다. 그럼 상투를 트지 못하는 당시 대머리들은 성인이 못 되었던가? 내 주식이나 상투에 팔아버리면 좋겠다.
이혼은 늘고 혼인과 출생은 역대 최저를 찍고 있는 시대다. 결혼을 안 하면 어른이 아닌가? 비혼족은 증가하고 셰어하우스에 모여 사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점차 보편화되는데 그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세대인가? 내 주변을 보면 결혼을 했어도 어른답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많은 사람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산다. 역시 어른에 대한 환상도 심하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느슨한 연대 가족의 형태로 바뀐 이 시대에 결혼이 과연 어른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남에게 존경을 받으면 어른이라는데 나는 타인에게 존경을 받고 있나?
누군가 나를 존경한다고 하면 오히려 더 거부감만 늘어날 것 같다.
존경이라는 말보다는 좋아한다는 말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좋아함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뀜에도 존경이라는 말의 무게감보다는 덜 부담스럽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존경하겠으며 가까운 가족도 나를 서슴없이 존경한다고 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욕만 덜 먹고 과거만 덜 털리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며 조용히 사는 게 미덕이다. 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잠잠한 그런 일상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보다도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기막힌 순간이 있다.
양식보다 한식이 좋을 때
자장면 대신 간자장 고를 때
오래 앉아 있으면 꼬리뼈가 너무 아플 때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시원하다고 느낄 때
코가 찡긋한 오이냉국을 한 번에 마실 때
몸에 좋다고 하면 하나 더 먹을 때
누구나 인정하는 어른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듯이 어른도 그러하다. 세상도 변하고 용납의 범위도 늘거나 줄어든다. 훌륭한 어른의 본보기로 존경받지 못해도 괜찮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지나간 다른 사람의 삶이 어느 순간 공감이 된다면 당신은 이미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