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현재 호르몬 전쟁 중

어디야?

by 아스크
하루 종일 집에서 고양이 마냥 소파에서 뒹굴고 있던 중학생 남자아이가 저녁 무렵에 갑자기 친구와 자전거를 타겠다고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간다.

초가을이라 제법 저녁 날씨가 쌀쌀한데도 겉옷 하나 걸치지 않고 그냥 나간다. 진짜 자전거를 타러 가는지 아니면 따뜻한 PC방을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간 지 3~4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가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야?"



이때의 "어디야?"는 빨리 들어와라 배고프지? 집에 와서 저녁 먹어. 엄마가 걱정이 돼서 그래. 다음부터는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알았지? 라는 의미가 아니다.



"저녁 먹고 들어와라. 늦게 들어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가만 안 둔다. 알아서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저녁 해결하고 오라”는 의미다.



이 집은 현재 호르몬 전쟁 중이다. 엄마는 갱년기, 아빠는 오십춘기, 중학생 남자아이는 사춘기다. 약소국은 없고 강대국만 3개다. 자루에 담아놓았던 쌀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집안은 참담한 전쟁터다. 총탄이 아닌 잔소리가 머리 위에 쌩쌩 지나가고 짜증 섞인 목소리만 허공을 가르며 부딪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중재자는 없고 세력 다툼만 치열한 무법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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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사춘기, 갱년기



엄마는 발바닥이 화끈거려 새벽이면 잠에서 깨고 몸이 뜨거워지고 추워졌다를 반복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이 심하며 분노가 갑자기 치밀어 오른다. 불면증 때문에 몸에 좋다는 마그네슘과 신맛이 나는 타트체리를 섭취하지만 딱히 좋아지지는 않는다.



갱년기에 들어서면 몸안의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하고 신체적 이상현상들이 나타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는데 부자연스러운 신체변화가 정신적 궁핍을 일으킨다. 갱년기 증상은 노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 심하거나 견디기 어렵다면 반드시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여성 갱년기 증상으로 오해하기 쉬운 질환들이 많다. 특히 40대 이상의 여성이 만성적인 통증과 함께 불편 증세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병원의 정확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갱년기로 인한 증상이 아닌 자가면역질환, 섬유근육통, 갑상선 기능 저하증, 류머티즘 관절염, 자궁건강 등의 문제로 갱년기와 비슷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오십춘기,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다



아빠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인 오십대가 겪는 오십춘기를 본인이 지금 앓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사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게 무척 많아졌다. 그는 사진기도 게임기도 아내 몰래 구입하는 철부지 큰 아이가 되어 버렸고 어느새 감성 폭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비싼 영양제를 먹였더니 오히려 기운이 펄펄 나는 듯 자기만족에 사로 잡혔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심각한 육체적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어깨와 무릎 통증은 만성질환이고 기억력 감퇴와 피로는 젊을 때부터 늘 달고 살았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어 간수치가 걱정이 될 뿐이다.



노화는 꽃중년도 피해 갈 수 없다. 노화로 인한 남성 호르몬 저하는 복부 비만과 탈모, 성기능 장애와 깊숙이 연결된다. 남성 호르몬은 30대를 전후로 매년 1%씩 점진적으로 감소되며 50대에 진입하면 20대에 기록했던 최고치의 절반까지 떨어진다. 또한 면역력이 떨어지고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 대사성 질환의 위험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욱 커진다. 건강관리가 필요하지만 예방이 수월하지 않다. 귀차니즘 증후군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남성들은 운동 대신 약의 복용을 손쉽게 선택한다.



사춘기 '1024'



중학생 남자아이는 기승전 모든 일을 부모님 또는 남 탓으로 돌리는 최고 기술 만렙의 소유자다. 아이는 평소 아무것도 안 하고 드러누워 있기가 일쑤고 그냥 멍하다. 매사 심드렁하고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말투가 버릇없어 진지 오래다. 단지 집안의 서열을 정리할 때만 본인의 전투력을 최대로 폭발시킨다.



사춘기를 이긴다는 강력한 갱년기 엄마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춘기 중학생은 아니기에 가족 간에 평화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랴 그냥 가족들이 겪는 흔한 일인 것을. 아이는 감정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어른으로 한 걸음 성장한다.



요즘 사춘기를 가리켜 ‘1024’라고 한다. 10세에 시작해 24세에 사춘기가 끝난다는 의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시기이지만 한편 게임중독, 비만, 성조숙증에 노출될 위험이 증가한다. 사춘기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찾아오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대학입시와 취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어른으로 자라는 환경이 갈수록 열악하다.



시간은 어른어른하게 흐른다



더 이상 쫓아다니면서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던 성장기 예쁜 아이가 아니다. 엄마는 저녁 설거지를 끝낸 한가로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고 아빠는 언제나처럼 소파와 한 몸이 되고 싶다. 아이는 본인이 필요할 때만 부모로부터 격려와 용기, 지혜를 받고 싶다. 부모의 타이밍이 아닌 자신의 타이밍에 모든 걸 맞추길 원한다.


육아가 좋았던 시기는 지났다. 피는 꽃과 지는 꽃 중에서 지는 꽃이 더 독하다지만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나? 통화버튼을 눌러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걸어도 전화기를 잡고 버튼을 누른 것 그 자체가 호르몬 전쟁을 겪는 부모의 최고 관심이자 사랑이다. 가족 간에도 서로의 육체적, 정신적 통증을 깊이 이해할 수 없다. 굳이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다면 서로의 독기가 빠질 때까지 느긋이 기다리자. 각자의 시간은 어른어른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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