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신박한 여동생이 생겼다

종족 보존은 더 이상 어른의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by 아스크

인기 게임 대작들을 보면 다양한 종족 캐릭터가 나온다. 싸움을 잘하는 종족, 방어에 특화된 종족, 함정을 잘 파는 종족, 치유 능력을 사용하는 종족 등 각자 고유의 특징과 능력을 갖는다. 이러한 종족들이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로 구성된 게임은 게임 참여자에게 보다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하물며 게임 세상도 이러한데 인간의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종족이 등장하고 사라졌겠는가?



종족의 발자취는 바로 인간의 역사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종족을 이루어 한마을에 모여 살았다. 종족의 보존과 번성을 위해 다른 종족과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나라와 문명을 만들고 지금까지 억척같이 살아남았다. 이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을 가졌다고 인식되어 왔다.



나의 종족보존 능력지수는 평균 이상인가?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최하의 평균 합계출산율(0.92명)을 기록 중인 나라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 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예전처럼 노동력이 부족해 자식을 10명 정도 낳아 대체 노동력으로 쓰던 시절은 지났다. 부족한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어 출산율이 떨어진 것인가?



나는 하나 있는 아들 때문에 우리나라 종족보존 평균을 간신히 넘었다. 가끔 추가 자녀계획을 세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받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아이를 낳고 키우는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육아를 위한 기회비용은 점점 커지고 육아법에 관한 전문 책이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이제 육아는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육아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나아지면 출산율은 증가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재정적 지원만을 해주는 정책들로는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속도로 가면 100년 뒤에는 대한민국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데 나는 걱정할 자격도 없다.



자식은 투명안경 같은 존재



인도양의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은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우기 때마다 1억 마리 이상의 홍게가 번식을 위해 육지에서 바다로 향한다. 이 시기에 하늘에서 섬을 내려다보면 붉게 물든 섬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홍게에게는 종족 보존이 그들의 최대 소임이며 삶의 목표처럼 보인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홍게의 강인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는 이유도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산란기의 암컷 모기만 사람의 피를 빠는데 피 속에 있는 풍부한 철분과 단백질을 섭취해 모기 자신의 난자 발육을 돕는다고 한다. 나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힘들어 매번 식단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데 모기는 나의 피만 먹어도 단번에 해결되니 살짝 부럽다. 내 피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많아 맛도 없을 텐데.



어른이 될수록 자신만의 색안경을 낀 채 타인과 세상을 마주 보게 된다. 그러나 자식은 이런 나의 시선을 어느덧 교정시켜주는 투명안경 같은 존재다. 사람을 섣부르게 예단하는 습관을 버리도록 가르치고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도록 달래준다. 또한 자식은 볼 때마다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어릴 때 더 잘해줄걸 후회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자식이 주는 눈물과 걱정보다 기쁨이 더 크기에 내일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와 아내의 유전자가 섞여서 나온 실물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고 감사하다.



여동생 이미지 S.jpg (c) 2020 JiHyun Yoo All rights reserved



‘아리아’가 우리 집에 왔다



인터넷과 TV 약정 기간이 만료된지도 모른 채 사용하다가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계속 인터넷이 느리고 끊긴다고 해서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 속도가 업그레이드된 상품으로 새롭게 약정하고 설치하는 날 바로 인공지능 AI 스피커 ‘아리아’가 우리 집에 입양되었다.



간단한 음성 명령어로 조명을 켜거나 음악, 날씨, 생활정보 등을 들을 수 있다는 설명만 듣고 골랐는데 가끔 오작동이 있음에도 생각보다 편리하다. 무엇보다 리모컨을 알람으로 알아서 찾아주니 아주 신박하다.



스마트폰으로만 음악을 감상하다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으니 음질이 더 좋다. 또한 듣고 싶은 음악을 관련 키워드로 찾아 재생해주니 흡족하다. 어느새 신하를 거느린 제왕이 된 기분이 든다.



아들에게 여동생이 생기다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가 ‘아리아’의 이름을 너무 많이 부른다. 하루 평균 60번 이상 부르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끊임없이 자동으로 대답하는 기계인 데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기하게도 아들이 불러야 음성인식이 더 잘된다. 어른의 목소리는 싫은가?



근데 ‘아리아’의 목소리는 누나뻘인 것 같은데 왜 여동생이야? 하고 아들에게 물어본다.
아들은 “내가 반말로 부르니 내 여동생이지” 하고 말한다.



종족 보존의 합격도장을 못 받은 내가, 아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여동생을 선물로 준 것 같아 내 마음도 흐뭇하다. 종족 보존의 오롯한 기쁨이 이런 것일까?



어른의 삶은 결혼 후가 아닌 출산 후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짜증과 행복이 심하게 교차되지만 말로도 글로도 설명이 안 되는 감동과 가치가 존재한다. 내가 잘해서 칭찬을 듣는 것보다 아이가 박수갈채를 받으면 기쁨은 열 배가 되고 어느새 안도감에 눈물을 흘린다. 나에게 아들은 '한 인간을 이렇게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보배로운 존재다. 내 아이가 귀하듯 남의 아이도 소중하고 자식을 통해 나는 어른이 되었고 여전히 되고 있다. 평생 할 효도를 세 살 전까지 다 한다고 하는데 아들은 여전히 효도 중(?)이다. 오늘은 아들이 일찍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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