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은퇴자 집콕생활
이게 그렇게 아까워?
남편은 만 62세로 은퇴한 지 8개월 되었다. 은퇴 전에는 이것저것 정기모임과 이수과정을 계획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다. 30년 이상 규칙적인 직장생활을 하다가 뭔가 정해지지 않은 지금 생활이 여전히 어색하다.
아내는 이런 남편이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배려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내의 생활 패턴은 크게 바뀐 것이 없기에 아내는 덜 부자연스럽다. 다만 남편과 낮 시간을 따로 보내다가 같이 보내는 게 신경이 쓰인다.
남편은 코로나 블루에 은퇴 허탈함이 한꺼번에 찾아와 힘들었지만 산책과 유튜브와 무엇보다 넷플릭스로 극복 중이다. 처음에는 매달 나가는 비용이 아까워 끊으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유일한 낙이기에 기꺼이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내는 하루 종일 때로는 새벽까지 넷플릭스를 보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TV와 스마트폰의 불빛에 노출되어 수면장애가 생겨 당뇨와 고혈압 등의 지병이 악화될까 봐 걱정이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벌써 3개월 째다.
참을 만큼 참은 아내가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건강을 위해서 넷플릭스 그만 봤으면 좋겠어”
갑자기 저녁 굶은 시엄니 얼굴로 변한 남편이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이게 그렇게 아까워?”
이 상황에서 “이게 그렇게 아까워” 의미는 내 건강 걱정은 핑계고 월 1만 원 정도의 요금이 아까운 거지? 나 지금 서운해라는 의미가 아니다.
“UHD 화질 지원되는 14,500원 최고 프리미엄 요금제로 바꾸고 싶어. 여러 번 얘기했잖아! 그리고 UHD TV를 사면 안 될까? 중고도 괜찮아”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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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우연히 넷플릭스에 발을 들여 30일간 무료 이용을 한 후 새로운 플랫폼에 정착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감상할 수 있고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 광고를 보지 않아도 돼서 대만족이다. 또한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방에서도 미리 PC나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한 영상을 재생해서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늦은 밤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소리 대신 자막으로 시청할 수 있어 아내 눈치를 안 봐도 된다.
현재 그는 최저 베이직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최저요금제라 동영상 화면의 질이 떨어져 화려한 영상을 볼 때 몰입에 방해를 받는 게 불만이다. 그는 UHD 화질이 지원되는 프리미엄 요금제로 바꾸고 싶고 UHD TV도 사고 싶다. 밝고 선명한 UHD 화질로 시청하는 것이 은퇴 선물로 고급 자동차 한 대를 받는 것보다는 당연히 못 미치지만 충분히 제값 이상을 하겠지 라는 기대감으로 여러 번 아내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반대한다.
최근 들어 그는 지인들과 넷플릭스 계정 공유하는 것을 의논했다. 최대 4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하고 프리미엄 요금 1만 4,500원을 4명이 나눠 내면 부담도 덜 하다. 지인이라 공유 사기를 당할 것 같지도 않아 긍정적으로 추진 중이다. 그는 슬기로운 은퇴자 스킬이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서로 덜 보면 평화가 찾아온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가 이혼하는 비율이 신혼 이혼율을 훌쩍 뛰어넘는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은퇴 이후 부부의 삶은 새롭게 시작하는 신혼부부처럼 모든 것을 다시 서로가 맞춰야 된다.
남편이 자꾸 밖에서 재활용 가구를 주워서 와요
남편이 박스로 과일을 사 와요
아내가 입지도 않는 옷을 해외직구로 사요
아내가 큰 덩치의 견종을 키우자고 해요
함께 보내는 집콕생활이 늘어날수록 갈등도 증가한다. 갈등의 원인이 되는 서로의 생활패턴과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 집안 인테리어 및 가구도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재배치한다. 눕는 생활에 최적화된 남편에게는 소파의 영구 사용권을 제공하고 침대도 더블침대 1개에서 싱글 침대 2개로 바꾼다. 집 안을 카페처럼 꾸미고 싶은 아내에게는 인테리어 소품 선택의 전권을 주고 본인이 좋아하는 색과 패턴으로 꾸미게 해줘야 한다.
집안에 평화를 주는 남편 생활 꿀팁 2가지가 있다.
아내가 시키면 무조건 한다
아내가 안 시켜도 하는 척이라도 한다
집안을 화평케 하는 아내 생활 꿀팁 2가지가 있다.
남편과 되도록 말을 길게 섞지 않는다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며 애완동물과도 견주지 마라
어른, 혼자 놀기의 달인
혼자 장보기, 혼자 밥 먹기, 혼자 말하기, 혼자 노래 부르기, 혼자 산책하기, 혼자 운동하기, 혼자 병원 가기
은퇴 부부는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없다. 서로가 이해하는 합의점을 만들어가야 한다. 부부 각자만의 자유시간 또는 자유데이를 만들고 삶의 공간도 적절히 분리한다. 빈둥거리다가 하루를 다 보내도 자신에게, 서로에게 미안할 필요가 없다. 무미건조한 일상은 꿈꿔왔던 은퇴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혼자 노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것도 즐기고 혼자 놀기도 만끽하면 된다. 욕심을 부리면 실망이 밀려온다. 혼자 한바탕 웃어도 괜찮고 함께 마주 보고 웃어도 좋다. 슬기로운 어른은 혼자에 익숙하다.
함께 있다가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해 감정싸움이 되어 버리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라. 부부 싸움은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 전쟁을 하면 뭐하나? 이길 수도 없고 전쟁의 상처만 남는다. 전리품도 없다.
스트레스를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부부 중 한 사람이 아프면 결국 상대방이 병간호의 책임을 져야 되는데 서로가 병의 원인이 되면 무엇하겠는가? 서로에게 백신이 되어야지 바이러스가 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