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 자괴감 들게 만드는 노동 1위, 육아
내 노동의 역사와 육아의 차이
세상 모든 종류의 노동을 다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한 명의 육아인으로서 감히 말해보자면 육아는 제가 살면서 해 온 많은 노동 중에서
자괴감이 들게 만드는 데에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모든 노동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노동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대에는 본의 아니게 짧게라도 여러 노동을 경험해보았습니다. 몇 개만 대보자면 길거리에서 아무 가판대도 없이 책상 하나만 덜렁 놓고 화장품 팔기(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알바인 줄 모르고 갔었죠.), 사람들 졸업앨범에 나온 연락처 목록 보고 무작정 전화 돌려서 과외 광고하기(교육상담 알바라고 적혀있었습니다.)를 했을 때에는 자괴감이라기보다 전화를 돌릴 때마다 겪는 격한 거절감에 알바비를 받기 위한 최소 기간인 일주일을 하루 앞두고 우울감이 심해져 그만두었습니다. 돈까스집 알바를 할 때에는 알바생들 사이에서 소외감이 드는 게 힘들긴 했지만 손님들이 남긴 돈까스를 몰래 집어먹는(새삼 창피하고 구질스런 일이네요.) 재미가 있었고, 샤브샤브집에서 일할 때는 호출벨이 없었던 곳이라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 미리 알아채기 위해 각 테이블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과외 알바랍시고 학교도 다니기 전인 아이를 맡아 과외인지 놀이선생님인지 모를 알바를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버블티 가게에서 일할 때에는 레시피를 외우는 게 머리 아팠지만 짬날 때는 좋아하는 음료를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있었던 기억도 있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경험한 노동에 대해서만 적어도 이 정도니 제가 경험한 노동의 역사도 아주 짧은 편은 아니네요.
물론 이 각각의 노동도 절대 때려치울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만 2년이 되도록 했다면 쉽지 않았을 테죠. 그럼에도 앞서 말한 다른 노동과 육아의 차이가 있다면 육아는 출퇴근이 없다는 점인데 그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육아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낳은 이 작은 인간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못나고 미성숙하고 부족한 인간인지가 낱낱이 드러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 전에도 제가 완전한 성인이라는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바닥인 줄은 몰랐거든요. 아이라서 그럴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화가 나는 걸 느낄 때, 그 화를 느끼는 걸 넘어서 나보다 명확히 약하고 내 보호 아래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화를 표현해버렸을 때가 주로 그런 순간들입니다. 아이가 아픈데 그 아픈 아이를 밤낮으로 간호해야 될 나를, 워킹맘일 때는 그 와중에 일도 해내야 되는 자신을 먼저 떠올릴 때도 상당히 자괴감이 드는 순간들이죠. 얼마나 이 자괴감이 사람을 좀먹는지 지난 2년간 거의 매일의 성공과 실패가 자괴감을 느낄만한 하루였냐 아니냐는데 달려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시간들을 통해 깨달은 한 가지는 '자괴감'이 뭔가를 나아지게 하진 않는다는 건데도 그걸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자괴감과 반성의 경계란 참 모호하잖아요. 어디까지가 성장을 위한 반성이고, 어디까지가 나를 끌어내리는 자괴감인지 선을 명확히 그어 느끼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저는 대부분 반성인 것처럼 시작해서 끝은 항상 자괴감으로 내왔던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스스로에게 휘두르는 자괴감의 채찍에 중독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걸로 위안을 삼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면 참 끔찍하네요. 무튼 저는 아직도 자괴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 책임을 이 육아라는 노동의 특성에게 슬쩍 넘기고 싶어 오늘도 힘주어 주장해봅니다. 내가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건, 바로 자괴감 느끼게 만드는 노동 1순위가 육아기 때문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