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도 역시 나를 찾는 목소리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그마한 인간들이 어딘가 급한것처럼 엄마 엄마 불러대면 사실상 급할것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얼른 눈을 떠서 반응해야하죠. 그렇게 힘겹게 눈을 떠서 나를 잡아 이끄는 손을 따라 침실을 벗어나고나면 다시 잘 수있다는 희망은 얼른 내던지고 차라리 빠르게 정신차리는게 상책입니다.
두 친구는 이제 스스로 어느정도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건 아닙니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갑자기 세상잃은듯 엄마를 찾아대기 때문이죠. 게다가 언제 어떤요구가 올지 모르기때문에 나는 항상 그들이 있는곳에 존재해야합니다.
대체로 귀여운 이 친구들은 요구가 들어지지않거나 수가 틀어지면 마구 짜증을 내거나 울기때문에 주의해야합니다. 나는 그 속에서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선을 정해서 들어주고 그 외 뒤치닥꺼리를 하며 현재 나에게 없는 자유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합니다.
예컨대 오늘 나에게 자유가 있다면 뭘했을지에 대한 거예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집에 있는걸 대충 먹거나 먹고픈걸 시켜먹기도 하겠지, 조금 부지런을 떤다면 아침산책 후에 카페에 들어가 브런치를 먹으며 독서를 할 수도 있겠고. 대략 이런 상상들입니다 생각만으로 행복하다는건 거짓말이고 생각만 할 수 있다는건 사실 좀 서글프고 씁쓸한 일입니다.
여기까지 갔다가 현실로 돌아와 지금, 여기에서의 호흡에 잠시 집중합니다. 그래야 결국 현재에서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제가 요즘 읽는책에서 그러더군요. 저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오가며 살지만 결국 원하는건 현재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니까요. 호흡을 어느정도 느낀 뒤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각자의 놀이로 분주한 친구들을 보자면 웃음이 납니다. 이 조그만 사람들도 자신들만의 세계가 있다는게 새삼 재미있고 신기해서요. 물론 이 친구들은 그런 재미를 즐길 여유를 충분히 주진 않습니다. 곧 저를 부르고, 찾고, 떼쓰고, 졸라가며 요구를 해올테니까요. 매번 그 요구에 밝고 흔쾌히 응할순 없지만 할 수 있는만큼은 그리 해보려합니다. 그래야 이 친구들이 상상으로 그리는 세계도 조금은 더 흔쾌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