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그렇구나' 연습의 필요성
매번 걱정과 부담으로 시작하는 주말을 생각보다는 가볍게 보내고 난 월요일입니다. 주말부터 날이 흐리고 기온에 비해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날씨가 오늘도 여전하네요. 오늘은 사실 정신과 예약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과거형인 까닭은 그 예약을 미뤄 변경했기 때문이죠. 변경한 이유를 묻는다면 아직 이 전 병원에서 받은 약이 약 2일치는 남아있고, 오늘 그 일정을 까맣게 있고 세워둔 계획을 우선으로 하고 싶었다고 얘기할거예요.
나는 늘 계획을 세워두곤 합니다. 아이를 낳고나서는 얼마 안되는 자유시간을 해야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로 균형있게 채우지 않으면 어영부영하다 흘려보내기 일쑤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단위의 계획에 신경을 쓰곤 합니다. 오늘의 계획은 집안일들을 좀 하고 나와서 열심히 시험공부 진도를 나가는 거예요. 해야만 하는 일의 특징이 그렇듯 정말 애를 쓰지 않으면 집중이 되지 않고 자꾸 딴 생각, 딴 짓을 하게 되는데 일부러 주의를 붙들어두기 위한 연습장에 키워드를 써가면서 하는데도 쉽지가 않네요. 오늘 배운 내용 중에서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라는 개념이 나왔습니다. 사람은 부모, 가족과 같은 중요한 타인이 일정 기준이나 조건을 충족시켜야 사랑을 준다면 그 기준, 조건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느라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상담사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지 못해 힘든 그 사람에게 중요한 타인이 되어 부모에게 받지 못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주어야 한다는게 핵심이었죠.
이 개념에 대해 배우자마자 어제의 저녁 시간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도 새로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삼치조림을 했고, 늘 그렇듯 내 입맛엔 참 괜찮았는데 또 딸에게는 퇴짜를 당했습니다. 나름 자신의 기준이 있어 맛도 보지 않고 거절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면 화가 미치는 걸 참기 어려워집니다. 아마 내 고생과 노력을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서겠죠. 그리고 가뜩이나 저체중이라는 이 아이가 자꾸만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도 부채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그간 밥을 곧잘 먹어오던 아들까지도 평소의 양을 채우지 않고 그만 먹고 싶어해서 더욱 애가 탑니다.
이 모든 것이 겹쳐진 어제의 저녁식사 때 저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어요. 둘 다 그만 먹으라며 식탁 아래로 내려놓고도 계속 화가 나서 꼴보기도 싫은 마음에 안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똑똑 두드리며 엄마를 불러댔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긴 했지만 그렇다고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엌에 주저 앉아 아이들에게 저리 가라고 손짓을 하니 딸은 눈치를 보며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아들은 망설이다 근처로 조심히 다가와 3살짜리의 어설픈 발음으로 "엄마 미앙..."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아이들 밥을 떠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순간적으로 마음이 스르르 녹았습니다. 엄마 미안? 하고는 아이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죠.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사실 나를 열받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 고생을 무시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저 입맛에 맞지 않고 배가 충분히 고프지 않아 밥을 먹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요. 그걸 내 기준에 맞지 않았다고 강요하고 화를 내고 마침내는 보지 않으려고 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내 욕심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 사라진 모습이었죠. 사실 이렇게 반성했다고 해서 아으로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해낼 자신이 있는건 아닙니다. 무조건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부담감도 크고요.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내 기준을 다 내려놓고 무조건 다 존중해줄 수 있을까 벌써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긍정적 존중까지는 어렵더라도 화는 내지 않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그러려면 밥하는데 에너지를 덜써야 할까요. 아니면 하기는 해주되 안 먹을걸 미리 예상해두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둘 다 하면 마음이 좀 나을까요. 그냥 어떤 모습을 보이든 일단 '그렇구나' 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행동은 제지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은 싫어도 하게 해야하는 부모지만 기본적으로 하기 싫어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 대해서는 '그렇구나'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도 그 '그렇구나'가 와야겠죠. 역시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왕이면 영혼이 담긴 그렇구나 가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기계적인 '그렇구나'도 애써야 할 지경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봄비라지만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 이 날씨에 대해서부터 일단 '그렇구나. 비가 내리는구나.'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