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내 계획은 본다고 해서 이렇다 할 지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요즘 준비하는 시험을 위한 문제집도 아닌 슴슴한 에세이집을 들고 나와 그걸 읽는 시간사치를 부리며 삘 받아 내 글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껏 동네 카페에 앉고나서야 번뜩 정작 그 책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자고 있는 집에 돌아가자니 다시 나오지 못하는 길이 될까봐 겁이 났고 서둘러 구독하고 있는 이북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내가 보려던 그 책은 없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엄마들끼리 흔히 하는 말중 하나인 '아이를 낳으면서 뇌도 같이 낳았다.' 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때입니다.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빠르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 이 아까운 시간이 괜한 감정으로 낭비되지 않습니다. 시간낭비를 즐기러 온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보내려던건 아니니까요.
오늘의 선택은 달짝지근한 연유라떼입니다. 그냥 라떼를 마시자니 달달한 맛이 아쉬운 것 같고, 너무 달달하면 금방 질려버릴까봐 연유를 반만 넣어달라고 해서 나름의 커스텀 음료를 주문했습니다. 사실 이 주문의 과정은 간단한 듯 나름의 치밀한 계산이 속으로 진행되곤 합니다. 내가 마시고 싶은 걸 마시면서도 돈낭비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프티콘이 있지 않는 이상은 일단 비싼 시즌음료는 거릅니다. 다행히 특색이 있는 시즌음료들은 메뉴선정에 있어 고지식한 편인 저에게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아요. 오늘은 마침 따뜻한 라떼를 마시자니 아쉬웠지만 마침 그 라떼보다 고작 100원 비싼 연유라떼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500원 정도나 비쌌다면 나는 체념하고 그냥 일반 라떼를 시켜 매장에 있는 기본 시럽을 요령껏 넣어 마셨을겁니다. 얼핏 보면 서러움이 느껴질 것 같은 계산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아이들 없이 밖에 나와 어딘가에 앉아서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만족감이 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막상 기대하던 시간을 보내게 되면 초조함도 꽤 듭니다. 왜 너무 기대하던 걸 얻으면 오히려 그 기대보다 덜하다는 걸 실감하게 될까봐 무섭듯이 이 시간도 기대했던 것보다 허무하게 보내버릴까봐 조바심이 나는 그런 마음이죠. 지금처럼 첫 단추부터 계획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동네 도서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저는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책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걸 아이 낳고나서는 간혹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문득 떠올리면 그 시간이 아득하면서도 견딜 수 없게 물씬 그리워질 정도예요. 때로는 그 공간을 그리워하는건지 그 공간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는 나를 그리워하는건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마침 검색해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하네요. 너무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도서관을 떠올린 나를 꼬옥 껴안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을만큼요.
오늘만큼은 잠깐이라도 그리워하는 그 때의 나와 좋아하는 책들을 동시에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이 시간들이 대단하게 흐르진 않아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작은 풍선하나 달린듯 조금 가벼워진다면 그걸로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