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육아 소감문

더 이상 비장해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by AskerJ



육아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님의 말로 오늘의 소감문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육아는 마라톤이니 작은 것에 너무 비장해지지 말자.'

고백하자면 이미 지금까지 많은 육아의 날들을 비장하게 보내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배운 발달심리학의 내용들을 보며,

실제로 마음이 힘든 청소년 친구들을 상담하면서 부모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걸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중요한 환경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부모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마치 동일한 말인양

어차피 완벽해질 수 없는데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매달려 필요 이상으로 고달프게 살아온 것 같아요.


사실 어디까지 비장하지 않게 넘겨야 하는지,

어디까지는 그래도 좀 비장하게 신경 써야 하는지 잘 몰라서

결국은 모든 걸 비장하게 해 버리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에게 있어 모든 것에 비장해진다는 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미션으로 본다는 거였어요. 때가 되면 기저귀를 갈아입혀야 하고, 닦아줘야 하고

밥을 먹여야 하고, 간식을 챙겨줘야 하고, 재워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거였죠.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가 아이들이 자고 나서야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그걸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새삼스럽게 귀여워하는 거예요.

그건 때로 씁쓸하고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돌봄의 대상이 맞지만, 돌봄의 대상만으로 바라보는

엄마가 아니라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사실 모든 것에 비장해지는 건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를 뒤집어쓴 엄마의 욕심이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육아를 잘하는 쌍둥이 엄마다.'를 실현하고자 하는 조바심이었죠.


그렇다고 오늘부터 이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육아를 잘하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어요.

육아를 하다 보니 어차피 육아는 엄마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선 아이들이 따라줘야 하고, 아이들도 자신의 욕구와 선호가 있기 때문에

엄마의 뜻과는 다를 때가 많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걸 기준으로 삼아보기로 했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들과 눈 맞춤 자주 하기.'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기.'입니다.

이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엄마인 나를 위한 선택입니다.

아이들을 '돌봄의 대상'만이 아니라 '교감의 대상'으로 봐야

육아가 더 이상 일처럼 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최근에는 아이들을 보다가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일정 횟수 이상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나

이 세상을 살면서 한 번도 상처받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다.'라는 보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혼자서 '대신 그 말에는 진심이 실려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기까지 하면서요

그럼 얼른 횟수가 다 찰 수 있게 열심히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텐데- 하면서

동시에 정신없이 육아를 하면서 매일 밤 육아일기에나 사랑한다는 말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몇 번 정도의 사랑해가 쌓이면 그런 보장이 생길 수 있을까요?

그런 보장은 누구도 해줄 수 없겠지만, 그런 게 있다고 혼자 믿으면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자주 건네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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