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의 날에 남사친들을 만났다
미혼이었던 그때로 돌아간 시간
남편이 주말에 오랜 친구들과 1박으로 노는 약속을 잡은걸 허락해주고 나서 그 주말엔 누굴 섭외해서 독박 육아를 피할까... 생각하다 문득 억울해져 아니, 나도 놀고 싶은데??!! 하며 친정부모님께 아이들 맡기는 걸 요청드렸다.
종종 부탁드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쉽게 부탁드리는 건 또 아니다. 부탁드릴 때마다 흔쾌히 허락해주셔도 부모님 걱정, 애들 걱정과 더불어 감사하다 못해 죄송한 마음에 한편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느 한편은 신나는 것도 사실이다. 무겁든 어쨌든 내 하루의 자유가 허락되었으니까!
그때부터 이 매번 처음 주어지는 것 같은 자유를 어떻게 써야 제대로 썼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아이들 출산과 동시에 서울러에서 경기도민이 되고 나니 괜히 그리워지는 한강엘 갈까 늘 sns로만 보며 궁금해하던 곳들을 갈까 누구랑 갈까 혼자 갈까 고민하다 그 무엇보다 하고픈게 떠올랐다. 바로 밖에서 저녁에 맥주 마시기!! 맥주야 이미 절친한 육아 동료이긴 하지만 집에서 육퇴 후에 혹은 육퇴 직전에 홀짝대는 맥주와 해가 진 뒤 맥주집에 앉아 마시는 맥주란 차원이 다른 것이고, 꼼짝없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집에 있어야 하는 저녁시간에 밖에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저녁 맥주집은 자유와 해방의 상징처럼 다가와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럼 이 자유와 해방을 누구와 누릴 것인가! 하는데 이것도 바로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한 때는 자주 어울려 놀던 남사친들이었다. 그들과 또 실없는 농담에다 각자의 인생 고민들을 적당히 버무려 낄낄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낄낄거림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거리가 점차 멀어진 것이었기에 문득 떠올랐음에도 애틋했다.
마음은 정해졌으나 당장 실행으로 옮길 수는 없었던 것은 남편이 남사친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기준은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는 것인데 나는 남편이 자신의 자유시간을 여사친들과의 만남에 쓴다면 그렇게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다소 옹졸한 부인이라 더 어려웠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으니 "뭐 어때 뺨 좀 맞고 만나면 되지^^(우리 부부에게 뺨 맞을래 는 과격해 보이지만 합의된 농담이다)" 라는데 어쩐지 평소처럼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아 "뺨까지 맞아가며 만나진 않지"대답하곤 속으로 조용히 접기로 했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을 물색하고 있다는 걸 안 남편은 "나 진짜 상관없어서 농담한 건데?" 하는데 얄미우면서도 진짜 괜찮은 거였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고, 나도 나인 게 안심되자마자 재빨리 내가 생각한 멤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미혼인 남사친들은 엄마들끼리 흔히 쓰는 '자유부인'이란 단어에 "자유부인 너무 에로영화 제목 같아"라며 벌써부터 실없는 소리를 해대면서도 다들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애엄마가 되었다고 친구가 아니게 된 것도 아닌데 이 아줌마의 제안에도 흔쾌히 응해주다니! 싶었던 게 사실이다. 드디어 자유의 날이 되어 낮에 열심히 원하던 곳들을 여동생과 돌아다니면서도 한편에서 '우리가 더 이상 그때만큼 재밌게 수다 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더 노골적으로는 '내가 더 이상 만나서 재밌는 친구가 아니게 된 거면 어쩌지...' 하는 다소 찌질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런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정작 친구들을 만나니 그저 반갑고 좋았다. "힘들었는데 약 먹으니 좋아지더라. 역시 약 먹는 게 짱이야~~"하며 약이 필요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보낸 서로를 유쾌하게 다독였다. 과거 기억들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릴 적 개그욕심이 차고 넘쳤던 내 모습이며 신앙을 막 가지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개그욕심을 버리고 도덕 선생님이 되었던 나를 비춰주었을 때는 마치 남 얘기인양 생경하면서도 웃겼다. 여사친 1에 남사친 3에 나까지 모두 5명이 모여 열심히도 떠들었다. 이 자리엔 없는 공통 지인에 대한 이야기며 서로에 대해 내심 하고팠던 이야기까지 두서없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얘기 속에서 나는 어느새 결혼 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마음은 과거로 돌아갔지만 현실은 처음 만난 그 때로부터 10살도 훌쩍 넘게 먹어버린 터라 누군가는 골프 라운딩을 뛰고 오고 누군가는 급한 연구실 일처리로 주말 내내 일해야 될 상황이었으며, 누군가는 주말 행사일이 끝나고 달려온 터였다. 그럼에도 모여서 떠들 때만큼은 20대 초중반 그때처럼 대책 없이 웃기고 시끄럽고 거리낌 없다는 게 기뻤다. 생각보다 길어진 자리는 결국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압구정 거리의 신나고 핫한 젊은이들 사이로 세 남사친의 호위(?)를 받으며 내가 잡은 숙소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까지 고마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또 언제 이렇게 보게 될는지 다시금 기약이 없어졌어도 상관없이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