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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슬립 Jun 28. 2022

대낮 같은 한밤, 백야에선 어떻게 잘 수 있을까?

영화 〈인썸니아〉(2002) 속 백야와 불면증 이야기


Editor's note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인썸니아〉(2002) 속 기면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 〈인썸니아〉의 주인공 윌 도머(알 파치노 배역)는 알래스카로 파견된 뒤 매일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LA 경찰국 소속 베테랑 형사였던 그는 백야(白夜, Midnight Sun) 현상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죠. 밤이 되면 사라지는 캘리포니아의 태양과는 달리 알래스카의 여름 해는 24시간 자취를 감출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도머의 얼굴은 점점 초췌해집니다. 텅 빈 눈은 초점을 잃어갔고, 누적된 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판단력마저 점차 흐려졌죠.



사진 출처 : 영화 <인썸니아> 공식 예고편


물론 도머가 잠들지 못했던 건 단순히 백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속사정은 훨씬 복잡했죠. 알래스카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어 도머는 실수로 동료 형사 햅을 죽이게 됩니다.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를 추적하다 그만 함께 수사 중이던 햅에게 총을 쏜 것이죠. 햅은 도머의 과거 수사 비리를 알고 있던 동료였습니다. 도머와 알래스카로 파견되기 직전까지도 LA 경찰국에서 그에 대한 내사를 받고 있었고요. 도머에게 햅은 이미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던 셈이죠. 물론 그 때문에 도머가 동료를 죽이려 했던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악인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죠. 도머는 자신의 실수를 덮고자 완전 범죄를 감행합니다. 햅이 용의자에 의해 사살된 것처럼 사건을 조작하기로 결심했죠. 그날 이후 도머의 불면증은 더욱 심해집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매일 뜬 눈으로 날을 새우게 됐죠.



그 와중에 도머가 쫓던 살인 사건 용의자 윌터 핀치(로빈 윌리엄스 배역)까지 그의 목을 옥죄어옵니다. 핀치는 매일 새벽 도머의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와 협박합니다. 



“당신이 동료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당신의 죄를 눈 감아줄 테니 나도 살인 용의자로 붙잡히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부정한 거래를 제안해옵니다.


알래스카의 태양은 도머의 부정을 당장이라도 폭로하겠다는 듯 밤낮없이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도머는 호텔 방 블라인드 테두리를 테이프로 가리고, 블라인드를 뚫고 비쳐 드는 햇빛을 베개와 이불로 막아보려 애쓰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도머의 숙소에 있던 암막 블라인드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죠. 물론 도머가 빛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 해도 그는 죄의식 때문에 쉽게 잠들진 못했겠지만요.



사진 출처 : 영화 <인썸니아> 공식 예고편


실제로 ‘백야’는 불면증의 원인으로 꼽히는 현상입니다. 백야가 있는 노르웨이나 극지방에서는 불면증 환자 비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로 인한 우울증 환자 빈도와 자살률 또한 상대적으로 더 높고요. 이에 대해 뇌과학자 정재승은 “(우리 뇌에서) 일주기적인 행동을 관장하는 영역인 ‘시교차상핵’이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시교차상핵은 일종의 ‘생체시계’입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고,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눈이 떠지게 되는 것도 다 이 영역 때문이죠. 특히 시교차상핵이 24시간을 판단할 때 ‘빛’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빛이 있으면 낮이라고 여기고, 빛이 없으면 밤이라고 간주하죠. 그래서 “밤에 갑자기 빛을 쬐어주면 우리의 주기적인 행동은 심한 변화를 겪게”됩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 휴대폰이나 노트북, 전자책, TV 등 태양광과 파장이 비슷한 블루라이트 방출 기기에 노출되어 있으면 곧바로 숙면에 취하기 힘들어집니다.


만약 도머 형사가 단순히 백야 때문에 잠을 못 잤던 것이라면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암막 커튼만으로도 꽤 도움을 받았을 겁니다. 멜라토닌과 같은 수면 유도제가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입니다. 윤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체온 그리고 시간대에 따라 멜라토닌 분비량은 모두 다르다”라고 말합니다. 멜라토닌 분비와 체온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일주기 리듬을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바꿔줄 수 있습니다. 윤 교수는 “실제로 병원에서 ‘일주기 리듬 수면 각성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멜라토닌 약을 처방하거나 빛을 조절해 체온 리듬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광치료를 권장하기도 한다”라고 전합니다.


물론 도머 형사는 암막커튼과 멜라토닌만으로 불면증을 극복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백야와 함께 불안과 죄책감으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요. 6일 넘게 한숨도 못 잤던 도머는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알 파치노의 피곤에 절은 얼굴은 보는 사람마저 힘들게 할 정도였죠.


어느 순간 도머는 자신이 실수로 동료를 사살했음에도 고의였는지 타의였는지까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어찌 보면 불면증이야말로 윌터 핀치와 복잡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던 도머에게 가장 큰 복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핀치와 대치하던 도머는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온 후배 형사 엘리(힐러리 스웽크 배역)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좀 자야겠어.”


도머는 죽음으로서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 얼굴은 왠지 쓸쓸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영화 <인썸니아> 공식 예고편



<참고 문헌>


정재승,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어크로스, 2012.


서울경제, 〈[수면과 AI] ⑥ 수면 리듬을 스마트하게… 일주기 리듬 수면 각성 장애와 광치료기를 대체할 가정용 IT 조명 기기〉 (https://www.sedaily.com/NewsView/22SWJ9IV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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