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슬립 Jul 06. 2022

가위, 어디까지 눌려봤나요?

영화 〈돈 슬립(Dead awake)〉(2017) 속 수면마비 이야기

Editor's note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돈 슬립(Dead awake〉(2017) 속 수면마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너희는 잠에서 깨서 눈을 떴는데 몸이 안 움직인 적 있어? 
뭔가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든지,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방안에 무언가 사악한 존재 같은 게 느껴졌다든지…….”


사진 출처 : 영화 '돈 슬립' 공식 예고편


한 달 넘게 수면마비에 시달리고 있던 베스는 그녀를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준 친구들 앞에서 말합니다. 친구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 아무런 대꾸하지 않죠. 그러다 한 친구가 어색함을 깨뜨리고자 웃으며 끼어듭니다. “됐어, 이제 그만해.” 하지만 베스의 쌍둥이 동생 케이트는 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베스가 찾아와 하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랍니다.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몸이 굳어서 깨어나 보면 뭔가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거야.”


케이트는 베스를 데리고 수면 센터에 찾아갑니다. 담당의 사이크스 박사는 베스의 상태를 듣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수면마비는 무섭긴 해도 위험한 건 아니에요. 살면서 다들 한 번씩은 겪는 일이죠” 하면서요.


하지만 그날 저녁, 베스는 수면 도중 사망합니다. 쌍둥이끼리는 정말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걸까요. 베스가 사망하기 직전, 동생 케이트는 베스가 겪었던 수면마비 증상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그녀는 자다가 깨어나 눈을 떴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소복을 입은 여자가 침대로 기어 오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순식간에 케이트의 목을 졸랐죠. 케이트는 숨을 헐떡이며 겨우 일어났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베스의 집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베스는 이미 죽은 뒤였죠.


필립 구즈먼 감독의 영화 〈돈 슬립〉(2017)은 수면마비를 둘러싼 미스터리 공포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케이트는 베스의 죽음을 부른 수면마비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베스처럼 수면마비로 하나둘 죽어나갑니다.



사진 출처 : 영화 '돈 슬립' 공식 예고편


사실 ‘수면마비(Sleep paralysis)’란 한국에선 ‘가위눌림’이라고도 불리는 증상으로, 잠이 들었을 때나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흔히 꿈꾸는 수면(REM sleep) 직후에 골격근의 마비가 나타나는 증상을 말합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었 듯 이는 미국 인구 기준 8% 내외가 겪은 것으로 조사됐을 만큼 흔한 현상이죠. 다만 영화에서처럼 수면마비에 걸렸다고 다 죽음에 이르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수면마비가 동반하는 환각과 환청 증상 때문에 가위눌림은 귀신 이야기와 자주 엮이곤 하죠. 


신기하게도 수면마비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기이한 환영을 보거나 환청을 들었다고들 전합니다. 이를 두고 영화 속 사이크스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뇌가 생존 모드에 들어가면 당황하고 숨이 가빠지면서 환각을 볼 수 있다"


케이트는 베스의 사인을 추적해나가면서 수면마비로 죽었던 사람들이 생전에 모두 “(수면 도중) 누군가 자신을 올라타서 목을 졸랐다”고 입을 모았던 것에 주목합니다. 그건 케이트도, 베스의 남자친구였던 에반도 직접 경험했던 바였죠.


오랜 시간 수면마비 피해자들을 조사해온 하산 박사는 베스의 장례식에 찾아와 케이트에게 경고합니다. 수면마비 문제를 허투루 넘겨선 안 된다고요. 그러면서 화가 헨리 푸젤리가 1781년에 그린 그림 하나를 보여줍니다. 그 작품은 자고 있는 한 여자의 가슴 위에 악마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림이었죠. 하산은 수면마비가 ‘늙은 마녀 신드롬’이라고도 불려 왔다고 전합니다. 그는 늙은 마녀의 존재를 믿고 있었죠. 사이크스 박사는 케이트에게 “하산 박사의 이론과 치료법은 과학적이지 않다”며 주의를 줍니다. 하지만 케이트는 자신도 수면마비 도중 마녀를 직접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하산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케이트와 하산 박사는 귀신을 몰아내고자 무리한 시도를 감행합니다. 수면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순간, 즉 ‘마녀와 접촉할’ 동안 근육에 자극을 전달하는 아드레날린을 주사기로 대량 주입해 마녀와의 연결 상태를 인위적으로 끊어내 보기로 했죠. 그렇게 한 번 마비상태를 풀면 자신감을 얻고 수면마비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케이트와 함께 실험에 참여했던 에반이 수면마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지자 패닉에 빠지죠. 하산과 케이트는 다시 머리를 맞댑니다. 하산은 사람들이 나약해졌을 때 수면마비에 빠진다는 것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마녀는 심신이 약한 자들을 노리고 그들의 공포를 먹고 살죠. 두려움, 의심과 대면해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 마비를 풀어야 해요.”


하산의 접근법이 다소 미신적이긴 해도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심리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피로감은 수면부족, 불규칙한 수면 습관과 더불어 수면마비를 유발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영화 '돈 슬립' 공식 예고편


수면마비는 보통 트라우마를 느낄만 한 상황을 겪은 후 찾아오는데요. 케이트도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신이 베스와 에반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죠. 다행히 케이트는 그 모든 게 자신의 탓이 아님을 깨닫고 마녀를 칼로 찔러 무찌릅니다. “마음은 다스릴 수 있다”고 용기를 준 하산 박사의 조언을 기억하면서요.


어쩌면 이 영화는 수면마비를 ‘늙은 마녀’ 같은 귀신의 공격 때문이 아닌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녀가 몸은 지배할 수 있더라도 정신은 지배하지 못한다”고, “마녀는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하산 박사만 봐도 말이죠.


수면마비를 반복해서 겪는 사람들이 자는 동안의 고통이 두려워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텐데요. 이런 걱정들 때문에 불안장애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정신이 흔들리는 순간 편안한 잠자리에 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낮 같은 한밤, 백야에선 어떻게 잘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