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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 Oct 08. 2015

첫 게임 <슈퍼시노비>

그러니까 어린 시절. 누구나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알파벳을 일찍 깨우쳐 부모님에게 장밋빛 희망을 품게 한다던가, 숫자를 너무나 좋아해 100 자릿수는 껌으로 외워서 주위 사람들에게 앞으로 대성할 수학자가 될 것 같다는 식의 신동 소리를 듣던 그 시절 말이다.


솔직히 어릴 적 이런 신동 소리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신동 소리를 들었다. 지금이야 신동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삶을 살고 있는 88만 원 세대 5포 청년이지만 부모님께서 가끔가다 '네가 몇 살 때 한문을 깨우쳤고 몇 살 때 알파벳을 줄줄줄 외우곤 했었다'라고 말하며 '지금은 왜 그 모양이냐'라는 눈빛을 뜨겁게 받곤 한다.


이모냥이 된 이유에 대해 부모님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것은 게임 때문이었다.


아직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나는 게임을 너무나도 좋아해 아버지를 졸라 오락실에 가기 일쑤였고 옆집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페미컴을 부러워했었다고 한다.(부모님의 회상에 따르면)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당시 최신식의 게임기를 사주게 된다.


당시 반지하에 별 세간살이 없이 가난한 서민층의 삶을 살고 있었던 부모님이었지만 하나뿐인 아들에게 남의 자식들 만큼은 키운다는 뜻으로 최신식의 삼성전자의 16 BIT 알라딘 보이가 나의 품에 들어오게 된다.

아름다운 알라딘 보이. 해외에서는 메가드라이브라고 불렀나보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알라딘 보이를 사면 딸려오는 번들 게임팩이 있었는데 그 게임은 <슈퍼시노비>였다. 닌자인 주인공이 악당에게 잡혀간 여친을 구하기 위해 모니터 안을 폴짝이며 적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나는 그 이후로 게임기가 나이고 내가 게임기인 물아일체를 바탕으로 주구장창 시노비에만 매달리게 된다. 6살의 게임 실력이 뭐 어디 가겠는가?


매일 죽음의 일상이었다. 이만큼 죽여대다간 나중에 저승에서 게임 속 주인공을 볼 낯이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슈퍼시노비. 얼굴만봐도 왜 슈퍼라고 붙였는지 알것 같다.

게다가 당시의 게임은 세이브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수 많은 죽음을 반복하며 새로운 단계에 돌입할 무렵 게임기는 꺼지고 TV는 꺼지고 나는 밥상으로 꺼져야 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기의 전원을 누르면 스테이지 1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의 시노비... 이것이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를 보고 있는 형사 테디의 마음일까?



하지만 반복은 어린 나를 단련시키고 결국 보스를 죽이는데 성공하게 된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엔딩에서 찬란히 웃고 있어야 할 주인공 시노비가 달밤에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며 서있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스테이지는 역시 마지막 다웠다. 감옥에 갇힌 여자친구의 머리 위로 커다란 돌이 천천히 떨어지고 시간 내에 구하지 못하면  압사당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스를 죽이는데만 혈안이 돼 있던 것이다. 때문에 시노비는 복수에는 성공했지만 여자친구를 잃어버린 슬픈 남자가 된 것이다.

마지막 여자친구의 얼굴은 신경쓰지 말자 옛날 게임이다.

그 이후 심기일전 하고 해피엔딩을 위해 도전을 하는 와중 뒤에서 눈빛이 느껴졌다. 외삼촌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외삼촌이 살고 있었다. 학력고사를 말아먹은 외삼촌은 재수를 핑계로 우리 집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런 삼촌은 나에게 마저 게임을 계속하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관중이 생기고 실력도 생기니 모든 스테이지는 쉬웠다. 게다가 수십 시간을 투자한 덕분인지 모든 적들의 패턴을 다 익혀 미리 피하게 되는 수준까지 오르게 됐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보스. 여기서 실패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리듬을 타는 것이지. 덕분에 마지막 스테이지를 끝내고 해피엔딩을 보게 됐다.


그리고 삼촌은


"누나! 얘 신동이여 신동. 아주 오락을 기똥차게 잘하네"


이라고 외쳤고 삼촌에게 '어서 공부나 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TV의 전원은 내려갔다.


2015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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